이사회·경영진 의사결정 회의의 AI 전환 — 회의 준비와 후속 조치에서 나타나는 변화
이사회와 경영진 의사결정 회의는 기업에서 가장 보수적으로 운영되는 회의체다. 자료는 비서실이나 이사회 사무국이 취합하고, 회의록은 사후에 법무 검토를 거쳐 확정되고, 결정된 사항의 후속 조치는 담당 임원이 다음 회의까지 구두로 챙기는 식이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몇몇 설문조사를 보면, 이 보수적인 회의체에도 AI가 생각보다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
도입률은 빠르게 올라갔다
이사회 거버넌스 소프트웨어 업체 온보드(OnBoard)가 거버넌스 담당자 531명을 대상으로 2026년 6월 초까지 진행한 '2026 이사회 효과성 설문'에 따르면, 응답한 이사의 92퍼센트가 지난 6개월 동안 이사회 업무에 AI를 활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2025년 같은 조사에서는 이 비율이 69퍼센트였다. 별도로 진행된 '디렉터 신뢰 지수(Director Confidence Index)' 2026년 6월 조사(미국 상장사 이사 104명 대상)에서도 82퍼센트가 최근 6개월 사이 이사회 업무에 생성형 AI를 쓴 적이 있다고 답했는데, 이는 2025년 9월 조사의 66퍼센트보다 늘어난 수치다. 표본과 질문 방식이 다른 두 조사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실제로 쓰이는 영역은 회의 자료 요약, 회의록 초안 작성, 과거 결정 사항 검색처럼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작업에 집중돼 있다. 이사회 소프트웨어 업체 딜리전트(Diligent)는 2026년 4월 연례 행사에서 'AI 보드 멤버(AI Board Member)'라는 제품을 공개했는데, 과거 이사회 자료와 회의록을 학습해 이사들이 회의에 들어가기 전 놓친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후속 조치를 챙기는 보조 역할을 하도록 설계됐다고 밝혔다. 이 제품은 현재 조기 접근 단계이고 정식 출시는 2026년 가을로 예고돼 있어, 아직 다수 기업에서 검증된 결과는 아니다. 개인 차원의 활용 사례도 보고된다. 한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는 2026년 10월 블로그 글에서, 자신이 참여하는 외부 이사회마다 별도의 AI 에이전트를 두어 그 이사회의 공유 폴더와 메일함 내용을 바탕으로 회의 전 브리핑을 받는다고 밝혔다. 다만 이는 개인이 구축한 개별 관행이고, 회사 차원에서 표준화된 절차는 아니다.
의사결정 안에는 아직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
도입률과 별개로, AI가 실제 리스크 감독이나 의사결정 과정에 얼마나 깊이 들어갔는지를 물은 조사는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거버넌스 연구기관 딜리전트 인스티튜트(Diligent Institute)가 월간지 코퍼레이트보드멤버(Corporate Board Member)와 함께 이사 2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6년 이사들의 생각(What Directors Think 2026)' 조사에서, 리스크 감독과 의사결정에 AI가 완전히 자리 잡았다고 답한 비율은 3퍼센트에 그쳤다. 정기적으로 활용한다는 응답은 20퍼센트, 최소한으로만 쓴다는 응답은 33퍼센트였고, 이 영역에서 AI를 전혀 쓰지 않는다는 응답이 40퍼센트로 가장 많았다. 회의 준비와 자료 검색에는 10명 중 9명 가까이가 AI를 쓰지만, 그 결과를 바탕으로 실제 판단을 내리는 단계에서는 여전히 소수만 AI에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회계·컨설팅 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2026년 3~5월 진행한 연례 이사 설문에서도, 이사들이 가장 보강해야 할 역량으로 꼽은 것은 AI 역량이었다. 그 응답 비율은 기술·디지털 전환 역량을 꼽은 비율의 두 배를 넘었다. 도구를 쓰는 것과 그 결과를 평가할 수 있는 역량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이사들의 자기 인식이 담긴 숫자다.
거버넌스 쪽의 대응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같은 온보드 조사에서 소속 이사회에 AI 활용에 관한 공식 정책이 없다고 답한 비율이 60퍼센트, 아무런 지침조차 없다고 답한 비율이 41퍼센트였다. 정책이 있고 실제로 지켜지는 이사회(전체의 6퍼센트)는 아무 정책이 없는 이사회(38퍼센트)보다 자체 평가한 운영 효과성 점수가 32점 높게 나타났는데, 반대로 이사회 자료 보안에 대한 확신은 1년 전보다 15점 낮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디렉터 신뢰 지수 조사에서는 96퍼센트의 이사가 회사나 이사회 포털이 승인하지 않은 외부 도구에 이사회 자료가 입력된 사례를 모른다고 답했는데, 이는 실제로 그런 일이 없었다는 증거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사용이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히기도 한다.
비용과 리스크는 어디서 움직이나
재무적으로 보면 이 변화가 당장 줄이는 것은 이사회 사무국이나 비서실이 자료를 취합하고 회의록 초안을 쓰는 데 드는 시간이다. 같은 인원으로 더 많은 위원회와 더 많은 회차의 회의를 지원할 수 있게 되는 효과이지, 조직 자체를 줄이는 문제는 아니다. 반면 비용이 새로 발생하는 지점도 있다. 공식 AI 사용 정책을 만들고 승인된 도구 목록을 관리하고 보안 검토를 거치는 작업은 그 자체로 법무·컴플라이언스 인력의 시간을 요구한다. 여기에 더해, 이사회 자료는 미공개 중요 정보와 인사·재무 민감 정보가 밀집된 문서다. 외부 범용 AI 도구에 그 내용이 흘러 들어가면 정보 유출이나 공시 위반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앞서 본 조사들이 보여주듯 그런 사용이 실제로 얼마나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상당수 이사회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리스크다. 회의 준비 시간을 아끼는 효과가 분명히 있는데도, 그 효과를 안전하게 거두기 위한 정책 정비 비용이 뒤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 기업에 주는 시사점
한국 상장사의 이사회 사무국은 대개 소수 인력으로 운영되고, 이사회 자료 준비는 지금도 수작업 중심이다. 회의 전 과거 결정 사항을 검색하거나 자료를 요약하는 단계에 AI를 들이는 것 자체는 해외 조사가 보여주는 흐름을 따라가는 자연스러운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보다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이사회 자료가 어떤 도구에 들어가도 되고 어떤 도구에는 들어가면 안 되는지에 대한 명문화된 기준이다. 해외 조사에서 드러난 간극, 즉 도입은 빠른데 정책은 뒤처져 있고 보안에 대한 확신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는 결과는, 도구를 들이는 순서보다 먼저 세워야 할 기준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참고한 자료
- 2026 Board Effectiveness Survey — OnBoard (보도 및 조사 요약)
- What Directors Think 2026 — Diligent Institute & Corporate Board Member
- Most Board Directors Say AI Skills Are Lacking, Survey Shows — Bloomberg Law
- Diligent Unveils AI Board Member and Agentic GRC Workforce at Elevate 2026 — CPA Practice Advisor
- AI agents help me manage outside boards (and a critical Claude limitation) — StartupC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