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품 출시(GTM) 프로세스의 AI 전환 — 시장 진입 속도는 실제로 빨라지는가
질문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은 이유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과정(GTM, Go-to-Market)에는 시장 조사, 포지셔닝 문서 작성, 영업 교육자료 제작, 가격 정책 수립, 출시 캠페인 기획 같은 작업이 촘촘히 엮여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생성형 AI가 잘하는 일, 즉 텍스트를 읽고 요약하고 초안을 쓰는 작업과 겹친다. 그래서 "AI를 들이면 신제품 출시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꽤 자연스럽다. 문제는 개별 작업이 빨라지는 것과 출시 일정 전체가 당겨지는 것이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둘을 구분해서 본 연구와 조사 결과를 보면 그림이 생각보다 복잡해진다.
실제로 빨라진 구간
가장 자주 인용되는 통제된 연구는 맥킨지(McKinsey)가 미국·캐나다·유럽·라틴아메리카의 제품관리자(PM) 약 4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이다. 참가자들을 그룹으로 나눠 제품개발수명주기(PDLC)의 여러 단계를 생성형 AI 도구 접근 수준을 다르게 준 채로 수행하게 한 뒤 결과를 비교했다. 맥킨지가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콘텐츠 비중이 높은 작업(시장 조사 요약, 문서 초안 작성 등)은 AI 도구를 쓴 그룹이 약 40퍼센트 더 빨리 끝냈고, 콘텐츠 비중이 낮은 작업(의사결정, 승인, 조율)에서는 그 차이가 약 15퍼센트로 줄었다. 그런데 6개월 길이의 PDLC 전체를 놓고 보면 시장 출시 시간 단축 효과는 약 5퍼센트에 그쳤다. 개별 작업 단위에서는 뚜렷한 효과가, 전체 일정에서는 미미한 효과가 동시에 나타난 셈이다.
실제 기업 사례 중에는 플립카트(Flipkart) 산하 패션 커머스 기업 민트라(Myntra)가 자주 인용된다. 인도 매체 인디안텔레비전(Indian Television)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민트라는 소프트웨어 개발 전 과정에 생성형 AI를 적용한 뒤 지난 1년간 제품 출시 시간을 40퍼센트 줄였다고 밝혔다. 같은 시기 공개된 다른 사례에서는 셀러 온보딩 기간이 최대 15일에서 2일 이내로, 상품 카탈로그 제작이 하루에서 약 4시간으로, 공급망 네트워크 시뮬레이션이 이틀에서 1시간으로 줄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이 수치들은 민트라가 자체 공개한 결과이고, 보도마다 '제품 출시 시간 40퍼센트 단축'과 '기능 출시 속도 40퍼센트 증가'라는 표현이 섞여 쓰이고 있어 정확히 같은 지표를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공급망·온보딩처럼 공정이 표준화돼 있고 반복 빈도가 높은 영역일수록 개선 폭이 크게 나타났다는 점은 일관된다.
왜 전체 속도는 그만큼 안 빨라지나
출시 일정을 당기지 못하는 이유를 짚은 자료들은 공통적으로 작업 속도가 아니라 조직 간 합의 구조를 지목한다. 컨설팅사 롤랜드버거(Roland Berger)의 분석은 제품 출시가 늦어지는 진짜 원인을 부서 간 반복되는 조율, 승인 대기, 확인 루프, 유관 부서의 응답 지연 같은 "횡단 복잡성(cross-functional complexity)"으로 짚는다. AI가 출시 시간을 최대 40퍼센트까지 줄일 수 있다는 이 회사의 주장도 개별 업무 속도가 아니라 이런 부서 간 지연을 줄이는 경로에서 나온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이 간극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자료는 제품 온보딩 소프트웨어 기업 앱큐즈(Appcues)가 2026년에 발표한 제품 출시 현황 조사다. 이 조사에서는 AI를 많이 쓰는 조직이 오히려 일정에 뒤처진다고 응답한 비율이 더 높게 나왔다. AI를 적극적으로 쓰는 그룹에서는 26퍼센트가 출시 일정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는데, AI를 적게 쓰는 그룹에서는 그 비율이 17퍼센트였다. AI가 리서치와 초안 작성 같은 입력 단계의 제약을 없애면서 오히려 더 많은 아이디어와 더 많은 기능 후보가 쌓이고, 그 가운데 무엇을 쳐낼지 결정하는 일이 새로운 병목이 됐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실제로 과도하게 설계된 범위를 80퍼센트 가까이 덜어내고서야 멈춰 있던 4개월짜리 프로젝트를 2주 안에 출시한 사례도 함께 보고된다. AI가 '만드는 어려움'을 없애면서 '무엇을 안 만들지 결정하는 어려움'이 그 자리를 채운 것이다.
재무적으로 무엇이 바뀌는가
이 구조를 재무 관점에서 보면 두 단계로 나뉜다. 콘텐츠 작업 단계에서는 외부 리서치 에이전시 의뢰나 추가 인력 투입 없이도 시장조사·포지셔닝 문서·교육자료 초안을 더 빠르게 뽑아낼 수 있으므로, 출시 준비 단계의 판매관리비 일부를 아낄 여지가 생긴다. 이는 사람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같은 팀으로 더 많은 출시 건수를 소화할 수 있게 되는 효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런데 승인·조율 단계는 성격이 다르다. 이 단계의 속도는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빨리 모여 판단을 내리느냐에 달려 있고, AI 도구가 이 구조 자체를 바꾸지는 않는다. 그래서 콘텐츠 제작 비용은 줄어도 출시 자체가 당겨지지 않으면, 매출 인식 시점이나 시장 선점 효과 같은 더 큰 재무적 이득은 그대로 지연된다. 출시 시간 단축이 실제 손익에 반영되려면 콘텐츠 단계에서 번 시간을 의사결정 단계의 병목을 줄이는 쪽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 기업에 주는 시사점
한국의 중견기업이 신제품 출시 프로세스에 AI를 들일 때 가장 흔히 저지르는 오판은 작업 단위의 속도 개선을 전체 출시 일정의 단축으로 바로 연결하는 것이다. 시장조사 보고서나 영업 교육자료를 며칠 만에 만들어낸다고 해서 출시일 자체가 그만큼 당겨지지는 않는다. 진짜 효과를 보려는 조직이라면 AI 도입과 동시에 승인 단계를 줄이거나 병렬화하는 작업, 그리고 늘어난 기능 후보 중 무엇을 쳐낼지를 빠르게 결정하는 체계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작업이 빨라진 만큼 결정이 느려지면, 출시일은 제자리에 머물고 남는 것은 검토만 쌓인 백로그뿐이다.
참고한 자료
- How generative AI could accelerate software product time to market — McKinsey
- Myntra cuts product launch time by 40% using generative AI — Indian Television
- Inside Myntra's AI playbook: Faster seller onboarding, smarter shopping, leaner operations — YourStory
- AI fast track to market launch — Roland Berger
- State of Product Launches 2026 — Appcu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