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관계(IR) 조직의 AI 전환 — 실적 발표 준비에서 벌어지는 변화
분기마다 반복되는 실적 발표는 기업과 자본시장이 만나는 몇 안 되는 공식 접점이다. 재무팀이 숫자를 확정하면 투자자 관계(IR) 담당자는 그 숫자를 설명할 스크립트를 쓰고, 나올 법한 애널리스트 질문을 예상해 답변을 준비하고, 경쟁사의 공개 자료를 훑어 비교할 점을 찾는다. 이 반복 작업에 AI가 들어오고 있다는 보도가 최근 늘고 있다.
어닝콜 스크립트를 AI가 먼저 쓴다
블룸버그 택스(Bloomberg Tax)가 2026년 10월 13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경비관리 소프트웨어 회사 익스펜시파이(Expensify)의 최고재무책임자(CFO) 라이언 섀퍼(Ryan Schaffer)는 자신의 과거 공개 발언을 학습시킨 사내 도구, 이른바 '라이언 봇(Ryan Bot)'을 실적 발표 스크립트 초안 작성에 쓰고 있다고 밝혔다. 섀퍼는 결국 초안의 상당 부분을 직접 고쳐 쓰지만, 백지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보도는 이것이 익스펜시파이만의 사례가 아니라 더 넓은 흐름의 한 단면이라고 짚는다. 재무 책임자들이 발언 초안을 다듬고, 애널리스트가 던질 만한 질문을 예측하고, 경쟁사의 공시 자료를 분석하는 데 AI를 쓰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공급자 쪽에서도 이 수요에 맞춘 제품이 나와 있다. IR 소프트웨어 업체 큐포(Q4 Inc.)는 'Q'라는 이름의 AI 에이전트를 통해 투자자 성향 분석과 실적 발표 준비 지원 기능을 제공한다고 밝히고 있다. 큐포가 포레스터컨설팅에 의뢰해 진행한 연구는 한 고객사의 3년간 경제적 효과를 추정했는데, 이 가운데 실적 발표·이사회·투자자 미팅 준비 시간 단축으로 인한 효율화 효과를 약 16만 9,000달러(약 2억 4,000만원)로 추산했다고 공개했다. 다만 이는 공급업체가 의뢰한 연구이고 고객사명도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업계 전반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수치로 보기는 어렵다.
도입률은 1년 사이 여섯 배로 뛰었다
도입 속도를 보여주는 독립적인 설문 결과도 나와 있다. 데이터 제공업체 팩트셋(FactSet)의 IR 솔루션 어윈(Irwin)이 발표한 '2026년 IR 현황' 조사는 전 세계 IR 담당자·컨설턴트·임원 22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는데, IR 조직의 AI 도입률이 1년 전 6퍼센트에서 올해 42퍼센트로 올라갔다고 밝혔다. 나스닥의 연례 글로벌 IR 발행사 설문(7회차, 2025년 4분기 약 700명 대상)도 비슷한 방향을 가리킨다. AI 기술을 업무 프로세스에 도입했다고 답한 비율이 전년 30퍼센트에서 올해 50퍼센트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두 조사는 표본과 '도입'의 정의가 달라 수치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방향성만큼은 일치한다. 실적 발표 준비는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문서 작업이 많아, 다른 기능 부서와 마찬가지로 AI 도입의 초기 수혜 영역으로 꼽히고 있다.
신뢰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정확성이다. 재무·리스크·지속가능경영 담당 전문가 2,272명(이 중 임원급 847명)과 기관투자자 367명을 대상으로 한 워키바(Workiva)의 2026년 중반 임원 설문은 이 간극을 구체적인 숫자로 보여준다. 응답 임원의 84퍼센트는 사람의 검토 없이도 AI 산출물의 정확성을 어느 정도 신뢰한다고 답했다. 그런데 같은 임원 가운데 26퍼센트, 즉 넷 중 하나는 AI가 만든 오류가 실제로 외부 공개 자료나 이사회 보고까지 흘러 들어간 적이 있다고 답했다. 자사 데이터 품질이 AI 활용에 충분하다고 답한 비율은 11퍼센트에 그쳤다. 투자자 쪽 응답자의 89퍼센트는 기업 공시에 들어간 AI 생성 콘텐츠의 정확성을 우려한다고 답했다. 신뢰도와 실제 오류 발생률 사이의 이 괴리를, 워키바는 '기대와 증거의 불일치'로 표현했다.
실적 발표는 증권거래법상 공시 책임이 따르는 문서다. 스크립트 초안을 AI가 쓰더라도 숫자의 정확성, 가이던스 표현의 수위, 미공개 정보 노출 여부는 결국 사람이 최종 책임지고 검토해야 하는 영역으로 남는다. 업계 해설 기사들도 공시 전략과 규제 대응, 주주와의 관계는 여전히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짚고 있다. AI가 바꾸는 것은 초안을 만드는 시간이지, 그 초안의 최종 책임자가 누구인지는 아니다.
한국 기업에 주는 시사점
한국 상장사의 IR 담당자도 실적 발표 때마다 비슷한 반복 작업을 거친다. 분기 숫자를 설명 가능한 서사로 바꾸고, 애널리스트 질문을 예상하고, 경쟁사 공시를 비교 분석하는 일이다. 이 작업에 AI를 들이는 것 자체는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이제 특별한 선택이 아니라 평균적인 선택에 가까워지고 있다. 다만 워키바 설문이 보여주듯, 속도를 올리는 것과 그 결과물을 믿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초안을 빠르게 뽑아내는 능력보다, 그 초안에 들어간 숫자와 표현을 누가 어떤 절차로 최종 확인하는지가 공시 리스크를 가르는 실질적인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참고한 자료
- Bloomberg Tax — From CFO Bots to Analyst Prep, AI Aids Earnings Call Readiness
- Workiva — One in Four Executives Say AI Errors Have Reached External Audiences or Boards
- Irwin(FactSet) 2026년 IR 현황 조사 관련 보도
- Nasdaq IR Intelligence — Global Issuer Pulse
- Q4 Inc. — Forrester 의뢰 Total Economic Impact 연구 보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