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 실사의 AI 전환 — 데이터룸 검토 속도는 실제로 얼마나 빨라지나
인수합병 실사(Due Diligence)는 오랫동안 변호사와 회계사가 서류 더미를 밤새 읽는 일로 여겨졌다. 계약서 수백 건에서 소유권 변경 조항을 찾고, 재무제표의 각주를 대조하고, 규제 리스크를 체크리스트로 훑는 작업이다. 반복적이고 양이 많다는 점에서 생성형 AI가 가장 먼저 침투할 것으로 예상된 영역 중 하나였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베인앤드컴퍼니(Bain & Company)의 2026년 인수합병 보고서는 실무자들의 AI 도구 사용률이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 45퍼센트에 이르렀고, 그중 가장 집중된 활용 영역이 실사라고 밝혔다. 가상데이터룸 업체 아이딜스(Ideals)가 2025년 8~10월 실시한 설문에서도 응답자의 약 3분의 2가 인수합병 업무에 AI나 자동화 도구를 쓰고 있다고 답했다.
개별 작업은 분명히 빨라졌다
법률 AI 업체 하비(Harvey)의 고객 사례로 소개된 독일 로펌 지에스카 스톡만(GSK Stockmann)은 구조화된 인수합병·사모펀드·부동산 실사 작업에서 15~20퍼센트의 시간 절감을 봤고, 정리되지 않은 데이터룸 문서를 다룰 때는 절감률이 75퍼센트까지 올라갔다고 밝혔다. 미국 로펌 케이엠에스시 로(KMSC Law)의 한 파트너는 수백 건의 문서가 걸린 거래에서 하비를 활용해 한 주에 약 10시간을 아꼈다고 전했다.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하비 위에 구축한 인수합병 자문 플랫폼은 초기 레드플래그 실사 보고서를 뽑아내는 워크플로를 1만 회 이상 실행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 수치들은 대부분 벤더나 벤더의 고객이 직접 공개한 것으로, 독립된 기관이 감사한 결과는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이런 도구들이 잘 작동하는 영역은 구조가 비교적 명확하다. 소유권 변경 조항이나 양도 금지 조항처럼 특정 패턴을 전체 계약서 묶음에서 찾아내는 작업, 재무제표의 숫자를 다른 문서와 대조하는 작업은 AI가 사람보다 빠르고 지치지 않고 수행한다. 반면 그 조항이 실제로 이번 거래에서 얼마나 위험한지, 매도자와의 협상에서 어느 선까지 양보할지를 판단하는 몫은 여전히 사람에게 남는다. 아이딜스 설문에서 응답자 절반 이상이 AI 도구의 가장 큰 한계로 "인간의 뉘앙스와 판단력 부족"을 꼽은 것도 이 경계선을 가리킨다.
그런데 딜 전체는 왜 빨라지지 않았나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나온다. 아이딜스가 자사 데이터룸을 거쳐 간 거래를 집계한 2026년 중간 리뷰에서는 2026년 상반기 거래 종료까지 걸린 기간이 평균 253일로 2022년 이후 가장 짧았다고 밝혔다. 짧아진 것은 맞지만, 같은 보고서는 거래당 데이터룸 체류 시간이 1년 전보다 8퍼센트 늘어난 237시간이라고 함께 밝혔다. 검토 도구는 빨라졌는데 사람들은 데이터룸에 더 오래 머문 것이다. 아이딜스는 이를 거래가 단순해진 결과가 아니라 실사 자체가 더 깊어진 결과로 해석했다. 참고로 아이딜스가 별도로 낸 전망 보고서에서는 평균 거래 기간이 264일로 2020년 대비 30퍼센트 가까이 늘었다는 수치도 나오는데, 집계 대상과 시점이 다른 자료라 두 숫자를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두 보고서 모두 공통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단위 작업이 빨라졌다고 해서 전체 실사 과정이 그만큼 짧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 현상은 설비 효율이 오르면 오히려 전체 사용량이 늘어나는 경제학의 오래된 관찰과 비슷한 구조를 보인다. 계약서 한 건을 검토하는 비용이 낮아지면, 예전에는 샘플링으로 넘겼던 부속 계약이나 자회사 문서까지 전수로 들여다보는 선택이 가능해진다. 결과적으로 검토 대상의 범위 자체가 넓어지면서, 절감된 시간의 상당 부분이 추가 검토로 다시 흡수된다.
이 변화가 움직이는 손익은 무엇인가
실사 업무의 전통적인 수익 모델은 변호사와 회계사의 시간당 과금이다. AI가 검토 시간을 줄이면 이론적으로는 자문 수수료도 줄어야 하지만, 시간당 과금 구조에서는 절감된 시간이 자동으로 고객의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로펌·회계법인 입장에서는 같은 인력으로 더 많은 거래를 동시에 받을 수 있게 되는 처리량 확대가 핵심 가치다. 이 가치를 고객에게 넘기려면 정액제나 성공 수수료처럼 과금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하는데, 이 변화는 기술 도입보다 훨씬 느리게 진행되는 영역이다. 인수 기업 쪽에서 보면 실사 비용 절감보다 더 큰 변화는 더 많은 매물을 동시에 검토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특히 소형·중형 거래를 여러 건 동시에 진행하는 사모펀드나 롤업 전략을 쓰는 인수자에게는, 검토 역량의 확대가 거래 성사율 자체를 바꾸는 변수가 된다.
한계와 한국 시사점
실사는 인수합병 전체 과정에서 실수가 가장 비싸게 돌아오는 단계다. AI가 중요한 조항을 놓치거나 문서를 잘못 분류했을 때의 대가는, 검토 시간을 줄여서 번 비용보다 훨씬 크다. 아직 이 도구들이 대형·복잡 거래의 핵심 판단까지 믿고 맡겨도 되는 수준인지를 검증한 독립 연구는 찾기 어렵다. 한국 인수합병 시장에서도 로펌·회계법인의 실사 비용은 중소·중견기업 매물일수록 거래 규모에 비해 부담이 크게 느껴지는 항목이다. 검토 도구가 빨라진다고 자문료가 자동으로 내려가지는 않는다는 해외 사례의 교훈을 감안하면, 한국 기업들이 이 변화의 혜택을 보려면 자문사의 과금 방식 자체를 함께 협상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는 점이 실무적인 시사점으로 남는다.
참고한 자료
- Harvey AI — GSK Stockmann and Harvey: Redefining the Due Diligence Process
- Ideals VDR — M&A deal timelines shorten for first time in four years: New report
- Ideals VDR — How dealmakers are using AI to gain an edge in M&A: New research
- Baker Donelson — The Deal Team's New Colleague: Using Artificial Intelligence to Run the M&A Transa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