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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AI책임자는 실권이 있는가 — 직함과 권한 사이의 간극

최고AI책임자(CAIO, Chief AI Officer)라는 직함은 2026년 들어 가장 빠르게 늘어난 C레벨 자리 중 하나다. 그런데 같은 해 나온 또 다른 조사는 정반대 질문을 던진다.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 실제로 뭔가를 결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두 조사를 겹쳐 놓으면, 직함이 늘어나는 속도와 권한이 옮겨가는 속도가 전혀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그림이 드러난다.

직함은 늘었다, 그런데 결정은 누가 하는가

아이비엠(IBM) 비즈니스 가치 연구소가 2026년 2~4월 33개국 21개 산업의 최고경영자(CEO)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는 응답 기업의 76퍼센트가 최고AI책임자를 두고 있다고 답했다. 1년 전 같은 조사에서는 26퍼센트였으니 한 해 만에 세 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반면 리서치 회사 버단틱스(Verdantix)가 38개국 29개 산업의 AI 전략 책임 임원 3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년 글로벌 조사에서는 최고AI책임자를 둔 기업의 비율이 48퍼센트로 집계됐다. IBM 조사와 표본과 질문 설계가 달라 수치 차이가 크지만, 두 조사 모두 이 직함이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는 방향성은 일치한다.

문제는 그 다음 질문에서 갈린다. 버단틱스 조사는 대규모 AI 투자를 최종 결정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물었는데, 최고AI책임자를 최종 결정권자로 꼽은 응답은 전체의 4퍼센트에 그쳤다. 반면 최고경영자가 최종 결정권자라는 응답은 40퍼센트, 최고정보책임자(CIO)나 IT 총괄이라는 응답은 23퍼센트였다. 최고AI책임자를 둔 기업의 절반에 가까운데, 그 자리가 실제로 돈이 걸린 결정을 내리는 비율은 10분의 1도 안 되는 셈이다. 버단틱스는 이 직함이 아직 정의가 정립되지 않아 조직마다 책임 범위가 크게 다르다는 점을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의사결정 권한을 이미 예산과 아키텍처를 쥐고 있는 최고정보책임자 쪽으로 모으고 최고AI책임자는 감독위원회 형태로 보완하라고 권고했다. 산업별로도 차이가 컸는데, 최고AI책임자를 둔 비율이 금융업은 83퍼센트, 비즈니스 서비스업은 73퍼센트로 높았다.

GM의 첫 최고AI책임자는 여덟 달 만에 자리를 떠났다

통계로만 보면 추상적인 간극이지만, 실제로 한 대기업에서 그 간극이 조직 개편으로 드러난 사례가 있다. 제너럴모터스(GM)는 2025년 들어 바락 투로브스키(Barak Turovsky)를 회사 역사상 첫 최고AI책임자로 임명했다. 구글(Google)에서 번역·생성형 AI 제품을 이끈 경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는 임명된 지 약 여덟 달 만인 2025년 11월, 링크드인에 짧은 글을 올리고 회사를 떠났다. 본인은 새로운 구상을 위한 안식 기간이라고 설명했지만, GM은 이 자리를 후임자로 채우지 않았다. 대신 AI 조직을 제조엔지니어링 부문 산하로 흡수시켰다. 업계 분석가들은 이 사건을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최고AI책임자라는 직함이 기업 조직 체계 안에서 아직 어디에 놓여야 할지, 그리고 C레벨 대표성을 가질 자격이 있는 자리인지 자체가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는 신호로 읽었다. 투로브스키의 퇴사 직전에는 소프트웨어·서비스 엔지니어링을 총괄하던 다른 임원도 회사를 떠나, GM의 기술 조직 전반이 재편 압력을 받고 있었다는 맥락도 함께 거론됐다.

GM의 사례가 특별히 예외적인 결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새로 생긴 자리라서 아직 맡을 사람과 조직 구조가 정착되지 않은 과도기에 흔히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직함을 신설하는 결정과 그 직함에 실제 예산·인사·의사결정 권한을 쥐여주는 결정이 서로 다른 결정이라는 점이다. 전자는 조직도 한 줄을 고치는 일이지만, 후자는 기존에 그 권한을 쥐고 있던 최고정보책임자나 각 사업부 책임자의 권한을 실제로 떼어내는 일이라서 훨씬 느리고 훨씬 저항이 크다.

권한이 쉽게 옮겨지지 않는 이유

이 간극이 생기는 구조적 이유는 비교적 단순하다. 예산과 시스템 아키텍처에 대한 통제권은 이미 최고정보책임자가 쥐고 있고, 전략적 우선순위에 대한 최종 책임은 최고경영자가 쥐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2026년 1,250여 명의 임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도 최고경영자 4명 중 3명가량이 자신을 회사 AI 전략의 1차 의사결정자로 꼽았다. 새로 만든 최고AI책임자 자리가 이 두 기존 권한 축 사이에 끼어들려면, 둘 중 한쪽이 자신의 권한 일부를 실제로 내줘야 한다. 그런데 신설 조직은 성과를 증명하기 전에는 권한을 먼저 받기 어렵고, 권한을 받지 못하면 성과를 내기도 어려운 악순환에 놓인다.

그 결과 상당수 기업에서 최고AI책임자는 실질적으로 전사 AI 도입 현황을 조율하고 각 부서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참모 기능에 머문다. 이 역할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여러 부서가 각자 다른 벤더의 AI 도구를 도입해 중복 투자하거나 서로 호환되지 않는 데이터 표준을 쌓는 것을 막는 조율 기능은 분명 필요하다. 다만 그 조율 기능과, 예산을 승인하거나 대규모 투자를 최종 결정하는 권한은 완전히 다른 역할이고, 많은 조직에서 이 둘이 같은 직함 아래 섞여 있다가 기대와 실제 권한의 차이가 드러나면서 갈등이 생긴다.

한국 기업에 남는 질문

한국 대기업 중에도 최고AI책임자나 이에 준하는 전담 조직을 신설한 곳이 늘고 있다. 이때 던져야 할 질문은 그 자리를 만들 것이냐가 아니라, 그 자리에 구체적으로 어떤 예산 승인권과 어떤 부서의 어떤 결정에 대한 거부권을 줄 것인지다.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 직함만 먼저 만들면, 대외적으로는 AI 전환에 앞서가는 신호를 주지만 내부적으로는 기존 최고정보책임자나 사업부장과의 권한 충돌, 혹은 권한 없는 자리에 대한 조직 내부의 냉소로 이어질 수 있다. GM의 사례가 주는 실무적 교훈은 그 자리를 급하게 만드는 것보다, 권한의 구체적인 경계를 먼저 설계하는 쪽이 결국 더 오래가는 조직을 만든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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