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조사·경쟁 인텔리전스 업무의 AI 전환 — 리서치 애널리스트의 역할은 무엇으로 남는가
시장조사와 경쟁 인텔리전스는 오랫동안 사람이 자료를 모으고 정리해서 판매하는 업으로 작동했다. 리서치 보고서를 사고, 분석가와 통화하고, 경쟁사 동향을 수작업으로 추적하는 구조다. 이 구조를 가장 먼저 흔든 쪽은 바깥의 신생 업체가 아니라, 그 업을 오래 해온 리서치 회사 자신들이다. 올해 나온 몇몇 설문과 투자 소식을 보면, 이 업종에서 무엇이 기계로 넘어갔고 무엇이 아직 사람 몫으로 남아 있는지가 꽤 또렷하게 드러난다.
애널리스트 회사 자신이 위협을 느낀다
리서치 산업 전문 매체 콘텐츠 캐털리스트(Content Catalyst)가 2026년 3월 발표한 애널리스트 리서치 리더십 설문은 애널리스트 리서치 기업 고위 임원 35명을 대상으로 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결과는 "AI 기반 저가 공급자"를 가장 큰 경쟁 위협으로 꼽은 응답자가 54%로, 전년보다 거의 두 배로 늘었다는 점이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은 경쟁 리서치 회사가 아니라, 고객이 직접 쓰는 자가서비스형 AI 분석 도구다. 같은 설문에서 57%는 자사가 AI 도입의 "중간 단계"에 있다고 답했는데, 실제 적용 범위는 초안 작성, 녹취 정리, 교정처럼 진입 단계 업무에 몰려 있고 사람의 검토를 거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고객 기대치 쪽 수치도 흥미롭다. 63%는 고객이 이미 AI 기반 검색·탐색 기능을 당연히 기대한다고 봤지만, 자사 포털이 그 기능에서 우수하다고 자평한 비율은 40%에 그쳤다. 고객이 원하는 것과 회사가 내놓는 것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뜻이다.
수집 업무를 빨아들이는 플랫폼
이 간격을 메우려는 자금은 리서치 회사가 아니라 플랫폼 쪽으로 몰린다. 기업 리서치·시장 인텔리전스 플랫폼 알파센스(AlphaSense)는 2026년 6월 3억 5,000만 달러(약 5,00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75억 달러(약 10조 7,000억원)를 인정받았다. 직전 평가액인 40억 달러에서 거의 두 배로 뛴 수치다. 비트루비안 파트너스(Vitruvian Partners), 액센츄어 벤처스(Accenture Ventures), JP모건 자산운용이 투자를 주도했고, 연간반복매출(ARR)은 2025년 10월 5억 달러에서 2026년 1분기 6억 달러(약 8,600억원)를 넘어섰다고 회사 측이 밝혔다. 이 회사가 보유한 기업 문서·리서치 자료 라이브러리는 5억 건을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최고경영자는 상장(IPO) 가능성도 언급했다.
이 투자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다. 자료를 모으고 1차로 정리하는 작업, 즉 애널리스트가 가장 많은 시간을 쓰던 업무가 사람이 아니라 거대한 검색·요약 플랫폼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신호다. 리서치 회사가 두려워하는 "AI 기반 저가 공급자"의 실체가 바로 이런 플랫폼이다.
영업 조직 안으로 들어온 경쟁 인텔리전스
같은 흐름이 경쟁사 동향 추적에서도 나타난다. 경쟁 인텔리전스 소프트웨어 업체 클루(Klue)는 2025년부터 제품을 에이전트형 AI 중심으로 다시 설계해, 영업 담당자에게 실시간 경쟁 정보를 넘겨주는 '컴피트 에이전트(Compete Agent)'와 승패 분석을 자동화하는 인터뷰 기능을 내놓았다. 비영리 소프트웨어 업체 블랙바우드(Blackbaud)는 이 도구를 도입한 뒤 주요 경쟁사 대비 영업 승률이 28% 올랐고, 담당자가 주당 이틀가량의 작업 시간을 아꼈다고 발표했다. 고객관계관리(CRM) 소프트웨어 업체 게인사이트(Gainsight)도 자사 사례 연구에서 이 도구가 영업 현장에 흩어져 있던 경쟁 정보를 영업 담당자가 필요한 순간에 바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다만 두 사례 모두 공급업체가 직접 공개한 수치와 발언이라는 점은 짚어둘 필요가 있다. 독립된 제3자가 검증한 숫자는 아니다.
경쟁 인텔리전스 업무가 과거에는 분기마다 한 번 정리하는 보고서 형태였다면, 이제는 영업 파이프라인 안으로 들어가 거래가 진행되는 매 순간 갱신되는 정보로 바뀌고 있다. 이 변화의 핵심은 경쟁사 신호 수집과 1차 가공이 상시 자동화됐다는 점이고, 사람은 그 결과를 어느 거래에, 어떤 메시지로 쓸지 판단하는 역할로 좁혀진다.
사람에게 남는 일 — 해석과 검증
그렇다면 분석가는 완전히 사라지는가. 업계 자체 조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시장조사 업계 동향을 추적하는 그린북(Greenbook)의 2026년판 통찰실무보고서(Insights Practice Report, 2026년 6월 발표, 2026년 1분기 설문 기준)는 업계가 두 가지 운영 모델로 갈라지고 있다고 짚었다. 하나는 폭넓은 인력과 사람의 판단에 의존하는 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분석 깊이와 기계가 보조하는 속도에 의존하는 모델이다. 같은 보고서는 에이전트형 AI가 이미 세 가지 업무, 즉 데이터 분석, 보고서 갱신, 데이터 준비·통합에 들어와 있다고 밝혔다. 동시에 거버넌스를 약점으로 지적했는데, AI 위험 관리에 대한 확신도가 높은 조직일수록 사업 목표를 달성하는 비율도 높았다는 상관관계를 함께 보여줬다. 전년도인 2025년판 보고서에서는 기업 내부에서 리서치를 발주하는 쪽(buyer-side)이 보고서 작성에 AI를 쓰는 비율이 1년 사이 아홉 배로 늘었다는 수치도 나왔다.
이 조사들을 겹쳐 보면 그림이 비교적 분명해진다. 자료 수집, 초안 작성, 데이터 정리처럼 규칙이 정해진 업무는 플랫폼과 에이전트로 빠르게 넘어갔다. 반면 그 결과를 검증하고, 어떤 신호가 진짜 중요한지 판단하고, 조직의 의사결정에 맞게 해석하는 일은 아직 사람이 쥐고 있다. 특히 검증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AI가 만든 요약과 분석은 그럴듯하게 맞아 보이는 형태로 나오기 때문에,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학습 데이터의 편향이 섞인 결과를 사람이 다시 확인하지 않으면 틀린 결론이 그대로 의사결정에 들어갈 위험이 있다.
한국 기업에 주는 시사점
한국의 중견기업 상당수는 시장조사와 경쟁사 동향 파악을 외부 리포트 구독이나 분기 보고서에 의존한다. 이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면, 정보가 갱신되는 속도에서 이미 한 박자 늦게 움직이는 구조가 고착된다. 지금 검토할 만한 순서는 두 가지다. 먼저 경쟁사·시장 신호 수집처럼 반복적이고 규칙이 명확한 업무를 상시 자동화 대상으로 분리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그렇게 모인 신호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검증하고 해석할지를 사람의 역할로 명시적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수집을 자동화했다고 해서 검증까지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애널리스트 리서치 회사들의 자기 진단이 이미 보여주고 있다.
참고한 자료
- eWeek — AlphaSense Hits $7.5B Valuation After $350M Funding Round
- AlphaSense — AlphaSense Raises $350M at $7.5B Valuation and Surpasses $600M in Annual Recurring Revenue
- Klue — Blackbaud Boosts Competitive Win Rates Against Top Competitors by 28% with Compete Agent
- Klue — How Gainsight Uses Klue's Compete Agent to Win Competitive Deals
- Greenbook — GRIT Insights Practice Edition 2026
- Businesswire — Analyst Research Firms Embrace AI Experimentation Amid Increasing Client Expectations, New Survey Fin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