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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 마감 프로세스의 AI 전환 — 월차 결산은 실제로 며칠 빨라지나

재무팀의 월차 결산(month-end close)은 오랫동안 회사 안에서 가장 예측 가능하면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반복 업무로 꼽혔다. 거래를 모으고, 계정을 맞추고, 여러 법인·여러 시스템의 숫자를 하나의 손익계산서로 묶는 일은 매달 거의 똑같은 순서로 반복되지만, 숫자가 안 맞는 예외 건을 찾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자동화 논의의 단골 소재였다. 최근 몇 년 사이 이 영역에 생성형 AI와 에이전트형 도구가 들어오면서, "결산이 며칠 빨라졌다"는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그 숫자 중 어디까지가 검증된 결과이고 어디까지가 마케팅인지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엑셀 색칠에서 자동 매칭으로 — 휴엘의 사례

영국 식품·음료 기업 휴엘(Huel)의 재무조직 사례는 비교적 구체적으로 공개된 축에 속한다. 재무통제 담당 책임자 쿠샬 말데(Kushal Malde)는 결산 작업을 엑셀 색칠과 메모, 메신저 대화와 기억에 의존해 처리해왔다고 밝혔다. 회사는 2026년 상반기 회계 소프트웨어 업체 플로캐스트(FloQast)의 결산 자동화 플랫폼을 도입했고, 거래 매칭과 계정 대조 작업에 AI를 적용했다. 공개된 결과에 따르면 월차 결산 기간이 영업일 기준 이틀 단축됐고, 법인별로 수 분씩 걸리던 잔액 대조 작업은 30초 안에 끝나게 됐다. 말데가 매달 저녁 시간을 들여 하던 검토 작업도 한 달에 3~4시간 줄었다고 전해진다. 휴엘은 같은 기간 매출이 두 자릿수대로 성장했는데도 재무 인력을 늘리지 않고 이 성장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이 사례가 의미 있는 이유는 수치 자체보다 구조에 있다. 결산은 매달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 업무이고, 규칙이 명확하며, 입력 데이터가 회계 시스템 안에 이미 구조화돼 있다. AI가 가장 먼저, 가장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업무라는 뜻이다. 사람이 하던 "이 두 숫자가 같은 거래인지" 판단과 "이 계정이 왜 안 맞는지" 추적을 모델이 먼저 걸러내고, 사람은 예외 건에만 집중하는 구조로 바뀐다.

벤더의 숫자와 독립 연구의 숫자

이 영역에서 가장 많이 돌아다니는 수치는 결산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직접 내놓은 것들이다. 회계 자동화 업체 블랙라인(BlackLine)은 자사의 에이전트형 AI 기능으로 결산 주기를 최대 70%까지 줄일 수 있다고 밝혔고, 비즈니스프로세스 아웃소싱 업체 제네팩트(Genpact)는 2026년 9월 선보인 결산 전용 AI 제품군이 결산 성수기 작업량을 최대 40% 줄이고 계열사 간 미대조 항목의 최대 99%를 실시간으로 해소한다고 발표했다. 두 수치 모두 해당 업체의 제품을 판매하는 입장에서 나온 자체 추정치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조금 더 독립적인 근거는 두 곳에서 나온다. 하나는 미국 생산성품질센터(APQC)의 기업 결산 벤치마크다. 1만 개가 넘는 조직을 조사한 자료를 인용한 분석에 따르면, 상위권 기업은 가결산부터 연결재무제표 완성까지 5일 안에 끝내고, 중간값 기업은 6일, 하위권 기업은 10일 이상이 걸린다. 다만 이 통계가 AI 도입 이전과 이후를 구분해서 추적한 자료는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

더 직접적인 근거는 2025년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과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슬론경영대학원 연구진이 공동으로 내놓은 연구다. 이들은 회계사무소 79곳의 거래 데이터와 회계사 277명에 대한 설문을 함께 분석해, 생성형 AI를 쓰는 회계사가 월차 결산을 그렇지 않은 동료보다 평균 7.5일 더 빨리 끝낸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같은 연구는 AI를 쓰는 회계사가 반복적인 후방 업무에 쓰던 시간의 약 8.5%를 더 높은 부가가치 업무로 옮겼고, 한 명이 담당하는 고객사 수가 평균 55% 늘었다고 밝혔다. 다만 이 연구의 대상은 중소기업을 대리해 결산을 처리해주는 외부 회계사무소였다는 점은 짚어둘 필요가 있다. 대기업 내부 재무조직의 결산과는 조직 구조와 통제 절차가 다르기 때문에, 7.5일이라는 수치를 그대로 모든 기업에 대입하기는 어렵다.

통제와 감사라는 변수

결산은 숫자를 빨리 만드는 일만이 아니라 그 숫자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회계·감사 자문사 BDO는 AI를 결산 업무에 들일 때 더 급한 위험은 모델의 오류 자체보다 이를 받아낼 통제 체계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한다. 자동 전표 발행, 승인 처리, 추정치 산출처럼 사람의 판단이 들어가야 하는 영역에서는 작성자와 검토자의 역할을 분리하고, AI의 산출물이라도 경영진의 책임을 대신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상장회사회계감독위원회(PCAOB)도 감사 과정에서 기업이 AI를 어떻게 문서화하고 통제했는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는 논의가 업계에서 나온다. 생성형 AI가 만든 숫자처럼 보이는 오류는 사람이 만든 단순 실수보다 발견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함께 따라온다. 그럴듯하게 맞아 보이는 숫자일수록 검증 절차 없이는 걸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에 주는 시사점

한국의 중소·중견기업 재무팀 상당수는 여전히 엑셀과 메신저로 결산을 돌린다. 이 영역은 거래 구조와 계정 체계가 비교적 표준화돼 있어서, 다른 업무보다 AI 도입의 위험이 작고 성과를 측정하기도 쉽다. 다만 벤더가 제시하는 40%, 70% 같은 숫자와 독립 연구가 보여주는 벤치마크 사이에는 적지 않은 간격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결산 자동화를 검토하는 기업이라면 먼저 자기 회사의 현재 결산 소요일을 벤치마크와 비교해 어디쯤에 있는지 확인하고, 그 다음으로 어느 계정·어느 법인의 대조 작업이 가장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지부터 들여다보는 쪽이, 도구를 먼저 사는 쪽보다 순서가 맞다. 그리고 속도가 빨라진 만큼 검토자의 역할과 승인 절차를 어떻게 재설계할지를 같은 시점에 함께 결정해야, 빨라진 결산이 감사에서 되짚히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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