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노동자 재교육, 왜 수료증만 쌓이고 실력은 그대로인가
엑센추어(Accenture)는 2025회계연도에 약 55만 명의 직원에게 AI 관련 교육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회사의 AI·데이터 전문인력은 7만 7,000명으로, 2년 전 4만 명에서 거의 두 배로 늘었다. 생성형 AI 관련 신규 수주는 연간 59억 달러(약 8조 4,000억원)에 달했다. 숫자만 보면 재교육이 이미 산업 전체의 표준 투자 항목이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과 그 교육이 실제 업무에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다른 문제다. 수료율은 쉽게 집계되지만, 수료 이후 사람들이 실제로 다르게 일하고 있는지는 측정하기 어렵다. 이 간극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올해 들어 하나둘 쌓이고 있다.
접근권한과 실사용 사이의 간극
JP모건체이스(JPMorgan Chase)는 사내 생성형 AI 도구 '엘엘엠 스위트(LLM Suite)'를 20만 명 넘는 직원에게 배포했다. 하지만 최고경영자(CEO)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이 2026년 2월 실적 발표에서 밝힌 바로는 실제로 이 도구를 주간 단위로 쓰는 직원은 약 15만 명이었고, 이용자들은 주당 평균 4시간 정도의 업무 시간을 아낀다고 답했다. 접근권한을 받은 인원과 실제로 습관적으로 쓰는 인원 사이에 상당한 격차가 있다는 뜻이다.
이 회사가 택한 보완책은 전사 의무교육이 아니라 '슈퍼유저' 모델이었다. 각 팀에서 AI 도구를 적극적으로 쓰는 상위 10~20퍼센트의 직원을 교육하고, 이들이 같은 팀 동료에게 실제 업무 맥락에서 사용법을 전파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프롬프트 작성법 같은 일반 교육을 전 직원에게 동시에 뿌리는 것보다, 자기 업무에서 이미 효과를 본 사람이 옆자리 동료에게 보여주는 방식이 행동 변화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고 본 것이다.
같은 도구, 다른 성과를 가른 것
왜 접근권한만으로는 부족한지를 더 구조적으로 보여주는 연구가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과 와튼스쿨 연구진이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컨설턴트 758명(전체 컨설턴트의 7퍼센트)을 대상으로 진행한 현장실험이다. 참가자를 AI 미사용군, GPT-4 사용군, GPT-4에 프롬프트 작성법 개요를 함께 제공한 군으로 나눠 18개 과업을 수행하게 했다.
AI의 처리 범위 안에 있는 과업에서 GPT-4를 쓴 그룹은 완료한 과업 비율이 12.2퍼센트 높았고, 작업 속도는 25.1퍼센트 빨랐으며, 결과물 품질 평가는 40퍼센트 더 높게 나왔다. 더 눈에 띄는 대목은 성과 분포였다. 평소 성과가 낮았던 참가자일수록 AI를 쓸 때 개선폭이 컸고, 평소 상위권이었던 참가자의 개선폭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하위권과 상위권 사이의 격차가 AI 사용으로 상당 부분 줄어든 것이다. 다만 연구진은 AI의 처리 범위를 벗어난 과업에서는 AI를 쓴 그룹의 정답률이 오히려 낮아졌다는 점도 함께 보여줬다. 어떤 일에 AI를 써도 되는지를 판단하는 감각 자체가 훈련 대상이라는 뜻이다.
이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범용적인 'AI 활용법' 강의보다, 자기 업무의 구체적인 과업에 AI를 적용해보고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를 직접 겪어보는 짧은 실습이 더 큰 차이를 만든다. 교육의 양보다 교육이 실제 업무 맥락과 얼마나 밀착돼 있는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시장은 이미 역량 격차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이 간극은 노동시장에서도 숫자로 드러난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27개국, 10억 건 넘는 채용공고를 분석해 발표한 '2026 글로벌 AI 잡스 바로미터(AI Jobs Barometer)'에 따르면 AI 관련 기술을 요구하는 직무의 임금 프리미엄은 평균 62퍼센트로, 1년 전 57퍼센트에서 더 벌어졌다. AI 숙련을 요구하는 채용공고 증가율은 69퍼센트로, 전체 채용공고 증가율 9퍼센트를 크게 웃돌았다. 업종별로는 격차가 더 커서, 소비자 접점 업종에서는 프리미엄이 118퍼센트에 달한 반면 공공부문은 16퍼센트에 그쳤다.
교육을 많이 제공한다고 이 격차가 자동으로 좁혀지는 것은 아니다. 엑센추어의 경우 55만 명을 교육하는 동시에, 정해진 기간 안에 새로운 역할로 전환하지 못한 인력에 대해서는 별도의 조직 조정을 진행했다고 공시했다. 대규모 재교육 투자를 발표한 기업이라 해도 전환 속도가 기대에 못 미치는 인력 문제까지 함께 끌고 가야 한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 기업에 주는 시사점
한국의 상황은 투자 부족보다는 체감 격차 문제에 가깝다.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스트랜드 파트너스(Strand Partners)에 의뢰해 국내 기업 리더 1,000명을 조사한 '2026년 한국의 AI 잠재력 실현' 보고서를 보면, AI를 활용한다고 답한 기업은 58퍼센트로 전년 48퍼센트에서 늘었고 이 중 81퍼센트가 생산성 향상을 체감했다고 답했다. 그런데 다음 세대 AI에 대비돼 있다고 답한 기업은 24퍼센트에 불과했다. 장벽으로는 AI·디지털 역량 부족(46퍼센트)과 변화 수용에 필요한 인력의 전환 역량 부족(33퍼센트)이 꼽혔다.
도입은 빠르게 번지고 있지만, 그 도입을 받쳐줄 역량이 조직 안에 자리 잡았다고 느끼는 기업은 소수라는 뜻이다. 특히 전담 교육조직이나 슈퍼유저 체계를 따로 운영할 여력이 없는 중소·중견기업일수록, 교육 이수율 같은 손쉬운 지표보다 소수의 핵심 업무에서 실제로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쪽이 투자 대비 효과를 가늠하기에 더 정직한 방법일 것이다.
참고한 자료
- PwC 2026 Global AI Jobs Barometer
- Navigating the Jagged Technological Frontier - Harvard Business School AI Institute
- Inside the Jagged Frontier - Ethan Mollick, One Useful Thing
- Accenture Reports Fourth Quarter and Full Year Fiscal 2025 Results - Business Wire
- AI 도입률 58%에서 전사 확장으로, AWS 보고서가 제시한 한국 기업 AI의 다음 단계 - SK A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