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텔레콤이 밝힌 AI 절감 목표 3조 9,000억원 — 통신사 간접비는 어디서 줄어드나
독일 도이치텔레콤(Deutsche Telekom)이 지난 10월 5일 본(Bonn)에서 'AI 투자자의 날'을 열고 중장기 절감 목표를 새로 제시했다. 기존 목표를 상향 조정한 숫자이고, 발표 다음 날부터 업계 매체에서는 그 숫자의 신빙성을 두고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통신사라는 산업 특성이 AI 전환(AX)의 재무 효과를 특히 뚜렷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그 효과를 어디서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의심도 함께 키우는 사례다.
무슨 일이 있었나
도이치텔레콤은 이날 미국 사업(T모바일 US)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에서 AI와 자동화를 통해 2027년까지 2023년 대비 약 11억 유로(약 1조 7,000억원)의 총절감을 내겠다고 밝혔다. 2024년 자본시장의 날에서 제시했던 기존 목표 8억 유로(약 1조 2,000억원)보다 상향된 숫자다. 더 장기적으로는 2030년까지 2023년 대비 간접비 약 25억 유로(약 3조 9,000억원)를 줄이겠다는 목표도 함께 내놓았다. 추가로 확보되는 절감분은 디지털 전환 가속과 독일 내 광케이블 구축에 재투자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절감만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회사는 미국 외 기업·공공 부문 고객을 대상으로 한 AI 관련 매출이 2026년 약 2억 5,000만 유로(약 3,850억원)에서 2030년 약 8억 유로(약 1조 2,000억원)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팀 호트게스(Timotheus Höttges) 최고경영자는 이 자리에서 "나는 AI 낙관론자다"라고 말하며, 이번 전환을 판단하는 기준은 결국 측정 가능한 가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회사는 기존 연간 가이던스와 중기 목표는 그대로 유지한다고 덧붙였다.
왜 통신사에서 나왔나
통신사는 AI 전환의 재무 효과가 유난히 선명하게 드러나는 산업이다. 네트워크 운영·고객센터·백오피스 전반에 인건비 비중이 큰 인력이 배치돼 있고, 그 업무 대부분이 규정과 절차가 명확한 반복 업무라는 공통점이 있다. 유럽 통신사들은 여기에 더해 수년째 가입자당 매출(ARPU) 정체와 망 투자 부담이라는 이중의 압박을 받고 있다. 성장이 더뎌진 사업에서 이익을 늘리려면 비용 구조를 건드리는 수밖에 없고, AI와 자동화는 그 비용 구조 조정의 명분으로 쓰기에 적합한 서사를 제공한다. 도이치텔레콤이 굳이 '투자자의 날'이라는 별도 행사를 만들어 이 숫자를 발표한 것도, 성장 스토리가 아니라 비용·효율 스토리로 투자자를 설득해야 하는 처지와 무관하지 않다.
재무적으로 무엇이 바뀌는가
공개된 숫자를 그대로 따라가면, 2027년까지의 목표 상향분(8억 유로에서 11억 유로로)은 약 3억 유로다. 이 정도 규모가 간접비 항목에서 추가로 빠져나간다는 뜻인데, 회사는 이 돈을 비용 절감으로 끝내지 않고 디지털 전환과 광케이블 투자로 다시 밀어넣겠다고 밝혔다. 절감이 영업이익을 바로 늘리는 쪽이 아니라 자본 지출(CAPEX)로 순환하는 구조라는 뜻이다. 2030년의 25억 유로 간접비 절감은 범위가 더 넓다. 통상 통신사의 간접비에는 고객센터·판매망 지원·행정 인력뿐 아니라 정보기술(IT) 시스템 유지보수, 외주 용역비 등이 폭넓게 들어가므로, 이 숫자가 어느 항목에서 얼마씩 나오는지는 회사가 세부적으로 분해해 공개하지 않았다.
AI 관련 매출 전망(2026년 3,850억원에서 2030년 1조 2,000억원)은 또 다른 축이다. 절감이 기존 손익계산서의 비용 항목을 줄이는 쪽이라면, 이 매출은 기업·공공 고객에게 네트워크·클라우드·AI 역량을 새로 파는 쪽이다. 두 숫자를 더하면, 도이치텔레콤은 같은 AI 투자로 비용과 매출 양쪽에서 손익을 움직이겠다는 계획을 세운 셈이다.
비판과 한계
발표 다음 날 업계 매체 라이트리딩(Light Reading)의 칼럼은 이 낙관론에 투자자와 직원이 똑같이 공감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칼럼은 도이치텔레콤의 2025년 인건비 총액(약 198억 유로) 대비 2027년 절감 목표(11억 유로)의 비율이 약 12.6퍼센트라는 계산을 제시하며, 만약 이 절감 전부가 인력 운용에서만 나온다면 상당한 규모의 인력 변화를 의미할 수 있다는 거친 셈법을 내놓았다. 다만 이는 회사가 공식적으로 밝힌 수치가 아니라 매체의 추정이고, 회사는 이번 발표에서 절감 재원을 인력 운용과 직접 연결해 설명하지 않았다. 통상 이런 절감은 인건비뿐 아니라 외주 용역비, 시스템 유지보수비, 설비 운영비 등 여러 항목에 걸쳐 나온다.
통신 산업 분석기관 엠티엔컨설팅(MTN Consulting)의 애널리스트 매트 워커(Matt Walker)는 다른 각도의 의문을 제기했다. 인건비 절감은 흔히 감가상각비 같은 다른 비용 증가로 상쇄된다는 지적이다. AI 인프라에 투자할수록 설비 관련 감가상각·상각비가 함께 늘어나기 때문에, 인건비 절감이 그대로 영업이익 개선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더 근본적인 한계는 시점이다. 이번에 발표된 숫자는 모두 2027년과 2030년이라는 미래 목표이고, 2023년을 기준점으로 잡은 다년간의 계획이라 중간에 목표가 수정되거나 재원 배분이 바뀔 여지가 크다. 숫자가 투자자의 날 발표 자료에 있다는 것과, 그 숫자가 분기 실적에서 매번 검증 가능한 형태로 추적된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한국 기업에 주는 시사점
한국의 통신·유틸리티·대규모 서비스 기업이 눈여겨볼 지점은 절감액의 크기가 아니라 설계 방식이다. 도이치텔레콤은 절감 목표를 발표하면서 그 돈을 어디에 다시 쓸지(디지털 전환, 망 투자)와 어떤 새로운 매출로 연결할지(기업·공공 AI 서비스)를 함께 제시했다. 비용을 줄이는 계획과 그 절감분의 재투자 계획, 그리고 새로운 매출원을 한 장의 그림으로 엮어 설명한 것이다. 반대로 이 사례가 보여주는 위험은, 다년간의 목표치와 그 목표가 실제로 어느 비용 항목에서 얼마나 실현됐는지를 분기 단위로 쪼개 보여주는 체계가 뒤따르지 않으면, 발표 시점의 설득력이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진다는 점이다. 절감 목표를 세우는 기업이라면 그 목표를 예산 대비 실적으로 매 분기 검증하는 장치를 함께 만들어야, 투자자의 날 발표가 다음 투자자의 날에도 신뢰를 유지한다.
참고한 자료
- Deutsche Telekom boosts growth, efficiency and quality through the use of AI (Deutsche Telekom Newsroom)
- Deutsche Telekom sees €2.5 billion in savings from AI, automation by 2030 (The Star / Reuters)
- Deutsche Telekom raises cost-saving targets at AI Day event (Investing.com)
- Deutsche Telekom boss's 'AI optimism' isn't shared (Light Reading)
- DT's CEO spies €1bn+ in near-term AI revenues (Telecom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