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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팀의 AI 전환 — 계약 검토와 규제 대응에서 나타나는 변화

경영 부서 가운데 AI 도입이 가장 보수적일 것 같은 곳이 법무팀이다. 실수의 대가가 소송이나 규제 제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계약 검토 업무에서는 해외 기업들의 구체적인 수치가 다른 어떤 기능보다 먼저, 뚜렷하게 쌓이고 있다. 동시에 같은 생성형 AI가 법정에서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만들어내 변호사가 제재받는 사건도 반복되고 있다. 법무 AI 전환을 들여다보면 성과와 위험이 같은 기술적 특성에서 나온다는 사실이 유독 선명하게 드러난다.

계약 검토, 가장 먼저 수치로 증명된 영역

워크데이(Workday)의 법무팀 사례는 이 영역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사례다. 워크데이는 계약 지능 스타트업 에비소트(Evisort)의 기술을 자사 법무팀에 먼저 적용하는 '커스터머 제로' 방식을 택했고, 10만 건이 넘는 고객 계약서와 주문서를 AI로 처리한 결과 분기마다 평균 4만 5천 시간을 절감하고 회피된 외부 자문 비용만으로 투자 대비 3,500퍼센트의 수익률을 냈다고 밝혔다. 회사가 공개한 사례 가운데는 인수 실사 과정에서 1천 건 넘는 계약서를 AI로 하루 만에 분석한 일화도 있는데, 외부 로펌에 맡겼다면 일주일이 걸리고 약 5만 달러(약 7,400만원)의 자문료가 들었을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워크데이는 이 내부 성과에 설득돼 2024년 에비소트를 인수했고, 한 시장조사업체는 인수 금액을 2억 5천만~3억 달러(약 3,700억~4,400억원) 수준으로 추정했다(워크데이는 금액을 공식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독일 도이치텔레콤(Deutsche Telekom)의 접근은 규모의 체계성에서 눈에 띈다. 법무·컴플라이언스·개인정보보호 부서가 함께 AI 적용 가능 업무 400여 개를 식별한 뒤 이를 50개 핵심 과제로 좁혔고, 하비(Harvey) AI를 계약 비교·초안 작성·번역 업무에 도입해 주 단위로 반복되던 작업 시간을 상당폭 되찾았다고 밝혔다. 수치를 구체적으로 공시하지는 않았지만, 400개 후보 중 50개를 추려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방식 자체가 법무팀처럼 리스크에 민감한 조직이 AI를 들일 때 참고할 만한 절차다. 업계 조사기관 리걸온(LegalOn)이 2025년 말 사내 법무 담당자 45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도 계약 검토에 AI를 실제 활용하는 비율이 2024년 대비 거의 네 배로 늘었고, 응답자의 79퍼센트가 반복적인 법무 업무에 쓰는 시간이 줄었다고 답했다.

규제 대응은 아직 걸음마 단계

규제 변화를 상시로 추적하는 영역은 계약 검토보다 도입이 늦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의 법무·대외협력 조직(CELA)은 여러 국가의 규제 변화를 수작업으로 추적하던 업무에 생성형 AI를 결합해 영향 분석과 대응 자문 작성 속도를 끌어올렸다고 밝혔고, 도이치텔레콤도 별도로 '로 모니터(Law Monitor)'라는 자체 도구를 구축해 각국 법령 텍스트와 이미지, 표까지 인식해 구조화하는 작업을 자동화하고 있다. 다만 두 사례 모두 아직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 시작해 적용 범위를 넓혀가는 초기 단계이고, 계약 검토처럼 시간 절감이나 비용 절감을 구체적인 숫자로 공개한 사례는 드물다. 규제 텍스트는 계약서보다 형식이 제각각이고 법역별 해석 차이가 커서, 같은 생성형 AI 기술이라도 표준화하기가 더 어렵다는 점이 이 격차의 배경으로 보인다.

같은 기술이 만드는 위험

법무 AI의 가장 큰 경고 신호는 법정에서 나온다. 2026년 7월 미국 제11연방항소법원은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인용한 변호사를 제재하며 "AI가 만들어낸 것으로 추정되는, 널리 알려진 허위 판례 인용 문제"라고 지적했다. 같은 시기 인디애나주의 한 사건에서는 생성형 AI로 작성한 준비서면에 가짜 판례가 포함된 사실이 드러나 담당 변호사가 6천 달러(약 890만원)의 제재금을 부과받았고, 2025년에는 앨라배마주 교정당국을 대리하던 변호사 세 명이 챗지피티(ChatGPT)가 만들어낸 허위 판례를 법원에 제출했다가 사건에서 배제되고 제재받았다. 법률 AI 사건을 추적하는 한 데이터베이스는 2025년 중반 기준으로 이런 허위 인용 사례가 100건을 훌쩍 넘는다고 집계했다. 계약 검토에서 성과를 내는 바로 그 생성 능력이, 검증 절차 없이 법정 문서에 그대로 쓰일 때는 반대 방향의 사고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재무적으로 움직이는 것과 한국 기업의 순서

법무 AI 전환이 움직이는 손익 항목은 비교적 뚜렷하다. 반복적인 계약서 검토에 쓰이던 사내 인건비와 외부 로펌 자문료가 줄고, 계약 처리 용량이 늘어나는 만큼 회사가 성장해도 법무 인력을 그 속도대로 늘리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생긴다. 반면 허위 인용 같은 위험은 제재금이나 평판 손실이라는 꼬리 리스크로 남는데, 이 비용은 평소에는 보이지 않다가 사건이 터져야 드러난다는 점에서 계약 검토의 절감액과는 성격이 다르다.

한국의 중견·중소기업이 법무 AI 도입을 검토한다면 해외 사례가 주는 순서는 비교적 명확하다. 반복되는 표준 계약서 검토부터 AI로 걸러내고 사람은 이례적인 조항 판단에 집중하는 방식은 이미 여러 해외 기업에서 수치로 검증됐다. 반면 규제 모니터링처럼 형식이 비정형적인 영역은 아직 해외에서도 공개된 성과가 얕으므로 서두를 이유가 적다. 그리고 어느 영역이든 생성된 결과를 사람이 최종 검증하는 절차를 함께 설계하지 않으면, 절감한 시간보다 더 큰 비용을 법정에서 치를 수 있다는 점은 업무 범위와 무관하게 공통된 전제다.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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