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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도입 후 조직도는 어떻게 바뀌는가 — 새로 생기는 역할과 사라지는 역할

세계경제포럼(WEF)이 2025년 초 발표한 『미래 일자리 보고서』는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일자리 1억 7,000만 개가 새로 생기고 9,200만 개가 사라져, 순증 7,800만 개가 될 것으로 추산했다. 22개 산업, 55개국 1,000여 개 기업을 조사한 이 보고서가 말하는 것은 일자리 총량의 증감만이 아니다. 같은 사람이 계속 같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조직 안에서 어떤 일이 누구의 몫인지 그 경계선 자체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는 쪽에 더 가깝다. AI 도입이 조직에 남기는 첫 흔적은 해고 공고가 아니라 새 직함과, 조용히 다른 이름으로 흡수되는 옛 직함이다.

최고AI책임자부터 은행 채용공고까지 — 새로 생기는 자리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맨 위에서 일어났다. IBM 비즈니스 가치 연구소가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와 함께 33개국 21개 산업의 최고경영자(CEO) 2,000명을 2026년 2~4월에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76퍼센트가 최고AI책임자(CAIO)를 두고 있다고 답했다. 1년 전 같은 조사에서는 26퍼센트였다. 한 해 만에 세 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이 조사에서는 AI를 중심으로 C-레벨 구성 자체를 다시 짠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전사적 AI 과제를 10퍼센트 더 많이 확장하고 있다는 결과도 함께 나왔다. 최고AI책임자라는 직함이 의전용 타이틀이 아니라 실제 의사결정 권한과 예산을 쥔 자리로 자리 잡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변화는 임원실에서 끝나지 않는다. 키뱅크(KeyBank)는 에이전트형 AI가 업무 흐름에 어떻게 투입되고 성과를 내는지 전체 수명주기를 책임지는 '에이전틱 AI 리드'를 채용하고 있고, 씨티그룹(Citigroup)은 다중 에이전트가 동시에 작동할 때의 오케스트레이션 설계와 규제 준수 통제모델을 전담하는 '에이전틱 AI 엔지니어링 리드'를,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는 가상 에이전트와 리스크 프로그램을 아우르는 'AI 프로덕트 오너'를 부사장급으로 두고 있다. 세 회사 모두 기존 IT나 데이터 조직 안에 있던 업무가 아니라, 에이전트를 사람처럼 관리하고 책임지는 별도 자리를 새로 만든 경우다. 팔란티어(Palantir)가 대중화시킨 포워드 디플로이드 엔지니어(현장 배치 엔지니어) 역시 2026년 1월 채용공고 건수가 1년 전의 약 19배로 늘었다는 집계가 있다. 코드를 짜는 사람과 현장에서 그 코드가 실제로 성과를 내게 만드는 사람이 분리되고 있다는 신호다.

프롬프트 엔지니어의 짧은 생애 — 사라진 게 아니라 흡수됐다

반대 방향의 사례도 뚜렷하다. 2023년 초 '연봉 20만 달러, 코딩 없이 AI에게 질문만 잘하면 되는 직업'으로 화제를 모았던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2년여 만에 사실상 독립 직함으로서는 저물었다. 구인구직 플랫폼 인디드(Indeed)에 따르면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관련 검색은 2023년 4월에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줄었고, 포춘(Fortune)은 2025년 이 직업을 두고 "이미 한물갔다"고 보도했다. 인디드의 이코노미스트 앨리슨 슈리바스타바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은 여전히 갖추면 좋은 역량이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직함은 아니다"라고 짚었다.

이 직함이 실제로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일은 AI 엔지니어, LLM 엔지니어, 응용 머신러닝 엔지니어 같은 더 넓은 직함 안으로 흡수됐다. 처음에는 프롬프트를 잘 쓰는 능력이 워낙 희귀해서 독립된 자리를 만들 수밖에 없었지만, 그 능력이 AI 관련 채용공고 대부분에서 기본으로 요구되는 역량이 되자 별도 직함으로 남아 있을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2000년대 초반 '웹마스터', 2010년대 '소셜미디어 전문가'가 겪었던 경로와 비슷하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누구 일도 아니라서 잠깐 독립 직함이 생기고, 그 기술이 보편화되면 원래 그 일을 해야 했던 직군 속으로 다시 녹아든다. 조직도에서 직함이 사라지는 방식에는 사람이 줄어드는 경우와, 일이 다른 이름 밑으로 재배치되는 경우 두 가지가 섞여 있는데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후자에 가까운 사례다.

채용 자체가 AI를 먼저 통과해야 하는 구조

조직도가 다시 그려지는 방식에는 자리의 신설·흡수만이 아니라, 새 자리를 만드는 절차 자체의 변화도 있다. 쇼피파이(Shopify)의 토비 뤼트케(Tobi Lütke) 최고경영자는 2025년 4월 사내 메모에서 팀이 인력 충원을 요청하기 전에 "왜 AI로는 이 일을 할 수 없는지"를 먼저 입증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 방침은 특정 직무를 없애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조직이 커질 때 사람을 늘리는 경로와 AI 도구나 에이전트를 붙이는 경로 중 무엇을 먼저 검토할지 순서를 바꾼 것에 가깝다. 실제로 같은 메모에서 뤼트케는 이 질문이 "꽤 재미있는 논의와 프로젝트로 이어질 수 있다"고 표현했고, 이 규칙을 경영진을 포함한 회사 전체에 동일하게 적용한다고 밝혔다. 조직이 성장할 때마다 자동으로 채용 인원이 늘어나던 관성에 제동을 걸고, 같은 인원으로 더 넓은 범위를 감당할 수 있는지부터 묻는 구조다.

최고AI책임자와 에이전트 관리직의 신설, 프롬프트 엔지니어 같은 과도기 직함의 흡수, 채용 절차 자체에 AI 검토 단계가 끼어드는 변화. 이 세 가지 흐름을 겹쳐보면 조직도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판단·조정·책임의 자리에는 새 직함을 만들어 명확히 소유권을 주고, 규격화되어 보편적 역량이 된 업무는 기존 직군 속으로 되돌려보내는 것이다.

한국 기업에 남는 과제

한국 대기업 상당수는 이미 최고AI책임자나 AI 전담 조직을 신설했지만, 그 자리에 실질적인 예산 편성권과 의사결정 권한을 함께 준 경우는 아직 드물다. IBM 조사가 강조하는 것도 직함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C-레벨 구성을 실제로 다시 짠 기업과 이름만 바꾼 기업 사이의 성과 격차다. 또한 국내 기업의 직급 체계는 연차와 호봉에 강하게 묶여 있어서, 프롬프트 엔지니어 사례처럼 특정 역량이 보편화됐을 때 그 역량을 다시 상위 직군으로 자연스럽게 흡수하는 절차가 서구 기업만큼 유연하지 않다. 새 직함을 만드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그 직함이 과도기용인지 항구적인 자리인지를 먼저 판단하고 조직도를 그에 맞게 계속 고쳐 쓰는 작업이다.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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