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의 클라이언트 제로 실험 — AI 전환 3년, 실제로 움직인 손익 항목
기업들이 AI 전환(AX)의 성과를 발표할 때 대부분은 파일럿 몇 건의 시간 절감률을 인용하는 수준에 머문다. 회사 전체를 3년간 실험대에 올려놓고 그 결과를 손익 항목별로 공개한 사례는 흔치 않다. IBM이 2023년부터 진행한 '클라이언트 제로(Client Zero)' 프로그램이 그런 드문 사례다. 이름 그대로 IBM이 자사 컨설팅과 AI 제품(왓슨엑스, watsonx)의 첫 번째 고객이 되어, 자기 회사의 구매·인사·정보기술(IT) 지원 업무에 AI와 자동화를 밀어넣은 뒤 그 결과를 숫자로 공개하는 방식이다.
목표를 두 배 넘긴 3년
아빈드 크리슈나(Arvind Krishna) 최고경영자는 2023년 초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2024년 말까지 20억 달러(약 2조 9,000억원) 규모의 생산성 절감을 목표로 제시했다. IBM의 자체 발표에 따르면 실제 결과는 2025년 말 기준 연간 환산 45억 달러(약 6조 6,000억원)로, 목표치를 두 배 넘겨 달성했다. 회사는 2026년에 10억 달러(약 1조 5,000억원)를 추가로 절감해 연말까지 누적 절감 규모를 55억 달러(약 8조원)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도 함께 내놓았다.
숫자만 보면 막연하지만, IBM이 공개한 기능별 세부 지표는 구체적이다. IT 지원 부서에서는 표준화된 문의 티켓 처리량이 56퍼센트 줄었고, 구매 부서는 연간 2만 6,000시간의 업무 시간을 절감했다고 밝혔다. 인사(HR) 부서에서는 여행 규정이나 복리후생처럼 반복적으로 들어오는 문의를 처리하는 인공지능 도구 애스크에이치알(AskHR)이 도입된 뒤 관련 문의 티켓이 75퍼센트 줄었다. 175개국에 흩어진 인사 규정을 사람이 일일이 찾아 안내하던 업무, 관리자가 해외 전보 처리마다 15분에서 20분씩 쓰던 업무가 자동화의 대상이 된 것이다.
성과 서사와 고용 현실 사이의 간극
IBM의 발표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절감액 자체보다 회사가 이를 고용과 연결해 설명하는 방식이다. 크리슈나는 여러 인터뷰에서 "특정 업무를 AI와 자동화로 처리했지만 전체 고용 인원은 오히려 늘었다"는 취지로 밝혔다. 절감된 예산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영업, 마케팅 같은 고부가 영역의 채용으로 재투자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IBM은 2023년 이후 레드햇(Red Hat) 등 인수를 이어가며 소프트웨어 중심 사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중이고, 이 재배치 서사는 그 흐름과 맞아떨어진다.
다만 같은 시기 IBM이 특정 부문에서 실제 인력 조정을 발표한 것도 사실이다. 2025년 하반기 들어 인프라 부문을 중심으로 전체 임직원의 한 자릿수 초반 비율에 해당하는 인력 조정이 있었다고 여러 매체가 보도했다. 회사 전체 고용이 늘었다는 설명과 특정 부문의 인력 조정 발표는 서로 배치되지 않는다. 성장하는 영역에서 채용하고 자동화가 진행된 영역에서 인력 운용을 조정하는 재배치가 동시에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절감액이 정확히 어떤 회계 방식으로 산출됐는지, 통상적인 비용 절감 노력과 AI로 인한 절감분을 얼마나 엄밀하게 구분했는지는 회사의 자체 발표 외에 독립적으로 검증할 방법이 없다. 아마존, 오라클(Oracle), 마이크로소프트, 메타(Meta) 등 같은 시기 인력 조정을 발표한 다른 기술 기업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서사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점은, 이런 절감액 발표를 읽을 때 참고할 만한 배경이다.
한국 중소·중견기업에 주는 시사점
IBM 사례에서 한국 기업이 눈여겨볼 부분은 절감액의 크기가 아니라 접근 방식이다. IBM은 챗봇 하나를 던져놓고 성과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구매·인사·IT지원처럼 반복 업무 비중이 높고 업무 단위가 명확히 쪼개지는 기능부터 순서대로 자동화 대상을 골랐다. 그리고 그 결과를 티켓 처리량, 업무 시간, 문의 감소율처럼 이미 회사가 관리하던 운영 지표로 측정했다. 새로운 AI 전용 지표를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 관리 지표가 얼마나 움직였는지를 보는 방식이다.
한국의 중소·중견기업 대부분은 IBM처럼 사내에 대규모 AI 조직을 둘 여력이 없다. 그러나 반복적이고 규정이 명확한 구매·인사·IT지원 업무부터 자동화 우선순위를 매기고, 그 성과를 기존 운영 지표로 추적하는 순서 자체는 규모와 무관하게 적용할 수 있는 틀이다. 절감액을 어디에 다시 투자할지, 그리고 그 재배치를 조직 내부에 어떻게 설명할지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점 역시 IBM 사례가 남기는 시사점이다.
참고한 자료
- The future is now: Driving USD 4.5 billion in extreme productivity with AI (IBM)
- IBM Confirms Layoffs Impacting Up to 5,000 Workers as It Shifts Focus to AI (TechRepublic)
- IBM layoffs loom as 'single-digit percentage' of global workforce set for cuts (ITPro)
- IBM lays off thousands globally amid fourth-quarter AI push (Tech.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