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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노동자 생산성 역설 — AI 도입에도 화이트칼라 생산성 지표는 왜 정체됐나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미국, 영국, 독일, 호주의 경영진 약 6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나온 숫자는 직관과 어긋난다. 응답 기업의 약 90퍼센트가 지난 3년간 AI가 고용에 미친 영향이 없었다고 답했고, 89퍼센트는 직원당 산출로 측정한 생산성에도 변화가 없었다고 답했다. 같은 기간 이 기업들의 AI 도입률은 평균 69퍼센트에 달했고, 경영진의 AI 사용 시간은 주당 1.5시간 수준으로 이미 일상 업무에 들어와 있었다. 도입은 됐는데 숫자는 그대로다.

같은 경영진들이 향후 3년을 내다보는 질문에는 다른 답을 내놓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앞으로 생산성이 평균 1.4퍼센트, 매출이 0.8퍼센트 늘고 고용은 0.7퍼센트 줄 것이라 전망했다. 지난 3년의 실적과 앞으로 3년의 기대 사이의 이 간극이야말로 지금 AI 생산성 논쟁의 핵심이다.

수치로 본 역설의 얼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95개국 4,454명의 최고경영자(CEO)를 조사한 29차 글로벌 CEO 서베이에서도 비슷한 그림이 나온다. 응답자의 56퍼센트가 AI 도입에서 "얻은 것이 없다"고 답했다. 매출 증가와 비용 절감을 동시에 실현했다고 답한 비율은 12퍼센트에 그쳤다. 다만 이 조사에는 갈림길도 함께 나타난다. AI를 제품과 서비스, 고객 접점까지 폭넓게 심은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영업이익률이 4퍼센트포인트 가까이 높았다. 도입 자체가 아니라 도입의 깊이가 성과를 가르고 있다는 뜻이다.

국가 단위 통계도 이 정체를 뒷받침한다. 미국 노동통계국(BLS) 집계로 민간 비농업 부문 노동생산성은 2024년 3.0퍼센트 증가한 뒤 2025년에는 2.2퍼센트로 오히려 둔화했다. 기업들의 AI 관련 자본지출은 이 기간 급증했지만, 연방준비제도 지역은행들과 펜 와튼 예산모형(Penn Wharton Budget Model) 등의 분석은 그 지출이 지금까지는 효율성 개선이 아니라 설비 투자 경로로만 성장률에 반영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돈은 들어갔는데 아직 산출로 전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업 단위에서는 분명히 움직인다

이 정체가 기술 자체의 무력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좁은 범위의 실험으로 들어가면 효과는 뚜렷하다. 에릭 브린욜프슨(Erik Brynjolfsson) 등이 콜센터 상담사 5,17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NBER 연구에서는, 생성형 AI 기반 상담 보조 도구에 접근한 상담사의 시간당 처리 건수가 평균 14퍼센트 늘었다. 경력이 짧고 숙련도가 낮은 상담사는 34퍼센트까지 늘어난 반면 숙련도가 높은 상담사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소프트웨어 개발 영역의 무작위 대조 실험에서도 깃허브 코파일럿(GitHub Copilot)을 쓴 개발자의 과업 완료 시간이 절반 이상 줄어든 결과가 보고됐다.

즉 문제는 "AI가 일을 못 한다"가 아니라 "일을 잘하는 곳과 회사 전체 숫자가 연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과업 하나를 떼어 놓고 보면 개선이 뚜렷한데, 그 과업을 회사라는 그릇에 다시 담으면 개선분이 보이지 않게 된다.

미시와 거시가 어긋나는 세 가지 이유

첫째는 비중의 문제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경제학자 대런 아세모글루(Daron Acemoglu)의 거시경제 분석은, 현재 기술 수준에서 AI가 수익성 있게 대체할 수 있는 업무 과업의 비중을 전체의 5퍼센트 안팎으로 추정한다. 그 5퍼센트 안에서 아무리 큰 개선이 나와도, 나머지 95퍼센트가 그대로라면 회사 전체 생산성 지표에는 흔적이 옅게 남는다. 그의 추정으로는 이런 구조에서 10년간 누적되는 총요소생산성 증가분이 최대 0.66퍼센트, 연평균 0.05퍼센트 수준에 그친다. 도입률이 아무리 높아져도 거시 지표가 소리 없이 움직이는 이유다.

둘째는 확산의 시차다. 개인 단위의 생산성 향상이 회사 단위의 성과로 집계되려면 그 개선이 조직의 업무 절차와 인력 배치, 평가 기준에 반영돼야 한다. 상담사 개인이 더 빨리 응대해도, 그 여유 시간이 다른 저부가 업무로 채워지거나 인력 재배치로 이어지지 않으면 전사 지표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20세기 전기화 과정에서도 개별 공장의 생산성이 산업 통계로 나타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는 경제사의 선례가 자주 인용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셋째는 반등 효과다. 과업이 빨라진 만큼 그 시간에 더 많은 업무를 벌이거나, 절감된 비용을 다시 새로운 AI 도구 구매에 재투자하는 경우 순생산성 개선은 상쇄된다. 속도는 빨라졌는데 처리량이 그만큼 늘어 결산에는 남는 게 없는 구조다.

한국 기업에 주는 시사점

한국의 중소·중견기업이 이 논쟁에서 얻을 실질적 교훈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전사 수준의 매출이나 인건비 총액이 당장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도입이 실패했다고 단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국내외 데이터는 그 정도 시차가 구조적으로 예정돼 있음을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그 반대로, 성과를 확인하려면 회사 전체 숫자가 아니라 좁게 정의한 과업 단위에서 직접 측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업무에 AI를 투입했고 그 업무의 처리 시간이나 오류율이 실제로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부서 단위로 추적하는 회사와, 전사 매출 그래프만 바라보며 성과를 판단하는 회사는 같은 도구를 쓰고도 완전히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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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IVITY · 인당 생산성DIAGNOSE · 지표 원인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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