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전틱 AI와 경영 의사결정 — 자동화 이후에도 사람이 남는 자리
에이전틱 AI(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여러 단계를 실행하는 AI)가 경영 현장에 들어오면서 나오는 질문은 늘 같은 곳으로 수렴한다. 분석과 초안 작성을 AI가 맡으면, 사람은 정확히 무엇을 하게 되는가. 이 질문에 가장 구체적인 답을 내놓은 곳 중 하나가 컨설팅업계 자신이다.
맥킨지의 실험: 인간 4만 명, 에이전트 2만 5천 개
맥킨지(McKinsey) CEO 밥 스턴펠스(Bob Sternfels)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회사가 인간 직원 약 4만 명과 나란히 자체 개발한 AI 에이전트 약 2만 5천 개를 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내에 에이전트 수를 인간 직원 수와 비슷한 규모로 맞추겠다는 목표도 함께 언급했다. 이 에이전트들은 검색·자료 종합 같은 조사 업무에 투입돼 지난 한 해 동안 150만 시간의 작업 시간을 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치가 더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조직 구성의 변화다. 여러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맥킨지에서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업무 인력은 25% 늘어난 반면, 후선 지원 업무 인력은 25% 줄었다. 그런데 후선 업무의 산출량 자체는 오히려 10% 늘었다고 한다. 인력 규모와 산출량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셈이다. 인사 평가처럼 내부 행정에 가까운 업무에서도 AI 에이전트를 투입해 소요 시간을 약 25% 줄였다는 보도가 나온다.
채용 기준도 함께 바뀌었다. 스턴펠스는 젊은 인재들에게 AI가 대신할 수 없는 역량, 즉 인간의 판단력과 진짜 창의성을 갈고닦으라고 조언했다고 전해진다. 회사가 도입한 신입 채용용 AI 면접에서는 지원자가 AI의 산출물을 그대로 받아 적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논리적 오류를 심어둔 결과물을 주고 이를 지원자가 검증·반박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방식을 쓴다고 알려져 있다. 분석 자체보다 그 분석을 의심하고 검증하는 능력을 채용 기준의 중심에 둔 것이다. 이 수치들은 회사 자체 발표와 CEO 인터뷰에 근거한 것으로, 외부 감사를 거친 공시는 아니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왜 하필 "판단"이 남는가
같은 패턴은 컨설팅업계 바깥에서도 반복해서 관찰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026년 발표한 글에서는 이 현상을 "판단 노동(judgement work)"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기계가 패턴을 찾아내고 예측하는 능력은 계속 좋아지지만, 정작 희소해지고 값이 오르는 것은 트레이드오프를 저울질하고 모호한 상황에서 "무엇이 좋은 결과인가"를 결정하는 인간의 판단력이라는 것이다. 같은 글은 이 판단력을 조직이 저절로 얻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길러야 한다는 역설도 함께 지적한다. AI가 판단력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바로 그 기술이, 사람이 판단력을 훈련받는 경로 자체를 줄여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법률 서비스 업계에서도 같은 경계선이 그어지고 있다. 리걸테크 업체 하비(Harvey)와 딥저지(DeepJudge)가 최근 맺은 제휴는 AI 에이전트가 로펌의 과거 업무 기록과 판단 근거를 학습해 조사·초안 작성까지 맡되, 기존의 접근 권한과 윤리적 격리벽(ethical wall)은 그대로 지키는 구조로 설계됐다. 업계를 다루는 한 매체는 이 구조를 "에이전트는 자료를 모으고 초안을 쓰고 이상 징후를 표시한다. 결정은 변호사가 내린다"는 문장으로 요약했다. 업계 설문에서도 이 경계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법률 전문가 가운데 AI가 직접 법률 자문을 내리는 데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답한 비율은 17%에 그쳤고, 에이전틱 AI를 업무에 적용하는 데 찬성한 비율은 48%였지만 나머지는 판단을 유보했다. 업무를 실행하는 손과 결과를 책임지는 판단이 분리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통계 전체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유보할 지점이 있다. 맥킨지가 자체적으로 진행한 "조직의 현재(State of Organizations) 2026" 조사(15개국 경영진 약 1만 명 대상)를 보면, 응답 기업의 88%가 AI를 도입하고 있다고 답했지만 그중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고 답한 비율은 20%에 못 미쳤다. AI 때문에 실제로 인력 규모가 줄었다고 답한 비율도 14% 수준으로, 1년 전 같은 조사에서 32%가 감소를 예상했던 것에 비하면 훨씬 낮았다. 앞서 본 맥킨지 자체 사례가 화제가 된 것도 사실은 그것이 흔한 일이 아니라 예외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대다수 조직에서는 아직 업무와 인력 구조가 AI 도입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간극을 만드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조직 구조다. 맥킨지나 하비처럼 업무 하나하나가 이미 "조사 → 초안 → 검토 → 승인"이라는 명확한 단계로 나뉘어 있던 조직은, AI가 앞 단계를 맡고 사람이 마지막 승인 단계에 집중하는 구조로 비교적 매끄럽게 재편할 수 있었다. 반면 업무 단계 자체가 문서화되지 않고 담당자의 암묵지에 의존하던 조직에서는, AI를 들여도 어느 단계를 맡기고 어느 단계에서 사람이 개입해야 하는지 경계선을 그을 기준 자체가 없다. 판단이 남는 자리를 설계하려면 먼저 그 판단이 지금 어느 단계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부터 알아야 하는데, 그 지도가 없는 조직이 대다수라는 뜻이다.
한국 기업에 주는 시사점
한국의 중견·중소기업에서 이 사례가 주는 실질적인 함의는 "AI가 어디까지 대신할 수 있는가"보다 "우리 업무에서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은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내려지는가"를 먼저 정리하는 데 있다. 견적서 승인, 계약 조건 확정, 채용 최종 결정처럼 한번 내려지면 돌이키기 어려운 판단 지점을 먼저 목록화하고, 그 앞 단계의 조사·초안·비교 작업을 AI가 맡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순서다. 이 지도를 만들지 않은 채 AI 도구부터 들이면, 맥킨지가 보여준 재편이 아니라 대다수 기업이 보고한 "도입은 했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는" 상태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참고한 자료
- McKinsey's CEO breaks down how AI is reshaping its workforce (Yahoo Finance)
- 'Judgement work' in the age of AI - and other jobs news (World Economic Forum)
- How AI Is Reshaping Legal Work in 2026 — July 2026 Update (AI Conference London)
- Highlights from the 2026 AI in Professional Services report (Thomson Reuters Legal)
- McKinsey's The State of Organizations 2026 research: Three decisions to make now (UNLE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