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xcorp

HPE 재무팀은 보고서 준비 시간을 어떻게 90% 줄였나 — 에이전틱 AI가 CFO 조직에 남긴 것

월요일 회의를 위해 일주일을 쓰던 팀

미국 IT 인프라 기업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의 재무팀은 매주 월요일 경영진 앞에서 100장이 넘는 운영성과 보고서를 발표해왔다. 문제는 이 보고서 한 부를 만드는 데 재무팀이 한 주를 거의 다 썼다는 점이었다. 최고재무책임자(CFO) 마리 마이어스(Marie Myers)는 이 병목을 회사 재무 조직의 구조적 문제로 규정하고, 컨설팅사 딜로이트(Deloitte)와 함께 에이전틱 AI(agentic AI, 사람의 개입 없이 스스로 작업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AI 에이전트 체계) 시스템을 만드는 작업을 주도했다.

무엇이 바뀌었나 — 수치로 보는 결과

이렇게 만들어진 시스템은 딜로이트의 에이전트 플랫폼 조라 AI(Zora AI)와 엔비디아(Nvidia)의 AI 스택을 기반으로 하고, HPE 자체 프라이빗 클라우드 인프라인 HPE 프라이빗 클라우드 AI 위에서 돌아간다. 사내에서는 배트맨의 집사 이름을 딴 "알프레드(Alfred)"로 불린다. 회사와 딜로이트가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이 시스템 도입 이후 주간 보고서 준비에 들어가던 수작업이 약 90% 줄었고, 재무 보고 주기는 약 40% 단축됐으며, 관련 처리 비용은 최소 25% 절감됐다.

더 눈여겨볼 지점은 인력 운용 방식이다. 마이어스와 재무·전략 부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1년 넘는 기간 동안 3,000명이 넘는 재무 인력을 재교육해, AI 에이전트를 직접 설계하고 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밝혔다. 도구를 사서 붙인 것이 아니라 같은 인력이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는 주체로 이동한 셈이다.

같은 회사, 다른 트랙 — 구조조정과 무엇이 겹치고 무엇이 다른가

HPE는 2025년 3월 별도로 회사 전체 구조조정 프로그램 "카탈리스트(Catalyst)"를 발표했다. 당시 목표는 IT 플랫폼 통합, 제품 포트폴리오 단순화, 조직 계층 축소를 통해 2028회계연도까지 연 3억 5,000만 달러(약 4,700억원) 이상의 구조적 비용을 덜어내는 것이었고, 약 6만 1,000명 규모였던 인력 가운데 2,500명을 12~18개월에 걸쳐 줄이고 자연감소로 500명을 추가 조정하는 계획이 포함됐다. 이 발표는 재무팀의 에이전틱 AI 시스템이 성과를 내기 전에 나온 것이다.

2026년 9월 초 공개된 2026회계연도 3분기(7월 마감) 실적 발표에서 회사는 카탈리스트 프로그램 안에서 "AI 기반 업무 단순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조직·시스템 통합으로 시작한 비용 절감 프로그램이, 시간이 지나면서 AI 에이전트가 실제 업무를 대신 처리하는 방식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같은 분기 매출은 122억 달러(약 16조 3,000억원)로 전년 대비 34% 늘었고, 정상화 기준 수주는 42% 증가했다. 서버·네트워크 부문의 AI 수요가 이를 이끌었고, 앞서 인수한 네트워크 장비 회사 주니퍼네트웍스(Juniper Networks)와의 통합에서도 2028회계연도까지 연 6억 달러(약 8,000억원) 규모의 시너지를 계획대로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무팀의 성과와 회사 전체 구조조정이 같은 "카탈리스트"라는 이름 아래 함께 발표되다 보니, 두 수치를 같은 원인의 결과로 읽기 쉽다. 하지만 재무 보고 주기 단축(40%)과 회사 전체 구조적 비용 절감 목표(3억 5,000만 달러 이상)는 시작 시점도, 성격도 다른 지표다. 후자는 AI가 본격적으로 성과를 내기 전인 2025년 초에 이미 계획된 조직 개편에서 상당 부분이 나온다.

한국 기업에 주는 시사점

이 사례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재무 조직이 AI 도구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 AI 에이전트를 만들 줄 아는 조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3,000명 규모의 재교육은 대기업이었기에 가능했던 숫자지만, 그 안의 원리는 회사 규모와 무관하게 적용된다. 외부 솔루션을 통째로 사서 붙이는 방식 대신, 재무 담당자가 자기 업무에서 반복되는 구간을 스스로 에이전트로 설계하고 예외 상황만 사람이 검토하는 구조로 옮겨가는 것이다.

보고 주기 단축이 갖는 의미도 함께 짚을 필요가 있다. 경영진이 한 달 전 숫자를 놓고 의사결정하던 방식에서, 거의 실시간에 가까운 수치를 두고 논의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단순히 야근이 줄었다는 것보다 훨씬 큰 변화다. 다만 40%라는 개선폭을 다른 기업에 그대로 옮겨 적용하긴 어렵다. HPE는 이미 대규모 데이터 인프라와 자체 클라우드, 컨설팅 파트너의 전담 지원을 갖춘 상태에서 이 작업을 시작했다는 전제를 감안해야 한다.

구조조정과 AI 도입이 같은 시기에 겹칠 때, 외부에서는 둘을 하나의 원인으로 묶어서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 사례가 보여주듯 실제로는 인력 재교육과 구조적 비용 절감이 서로 다른 시점에, 서로 다른 논리로 시작된 별개의 트랙일 수 있다. 발표 자료 안에서 이 두 트랙을 구분해 읽는 것이, AI 전환 사례를 참고하려는 경영자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독해력이다.

참고한 자료

이 글과 연결되는 표준 모듈
REPORT · 보고서 팩토리WORKLOAD · HR→AR 업무 재설계

글보다 직접 만져보는 게 빠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AIOS의 표준 모듈이 가상 기업 데이터로 실제로 돌아가는 체험 공간이 있습니다. 데일리 브리핑을 생성해보고, 손익 레버를 당겨 기업가치가 움직이는 것을 확인해보세요.

체험 공간 열기도입 문의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