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료는 왜 아무도 확인 안 하는가 — 새는 SaaS 지출을 상시로 감사하는 에이전트
자문을 다니면서 재무 담당자에게 법인카드 명세서를 같이 열어보자고 하면 꼭 한 번은 이런 순간이 온다. "이거 무슨 서비스죠?" "글쎄요, 예전에 누가 신청했던 것 같은데..." 담당자가 바뀌고, 프로젝트가 끝나고, 팀이 개편돼도 결제는 자동으로 계속 나간다. 한 건 한 건은 몇만 원이라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결제가 회사마다 스무 개, 서른 개씩 쌓여 있다. 다 더하면 한 달에 백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이 조용히 빠져나가고 있는 셈인데,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구독은 늘어나기만 하고 줄어들지 않는다
SaaS 구독의 특징은 시작은 쉽고 끝은 어렵다는 것이다. "일단 한 달만 써보자"는 결정은 누구나 가볍게 내린다. 카드 등록하고 무료 체험 끝나면 자동으로 유료 전환되고, 그 다음부터는 관성이다. 해지하려면 그 툴을 누가 왜 신청했는지, 지금 누가 쓰고 있는지, 끊으면 뭐가 멈추는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이 확인 자체가 일이다. 담당자는 이미 퇴사했고, 팀장은 그런 툴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들 확인하는 대신 그냥 둔다. 결국 회사의 SaaS 목록은 한 번도 청소된 적 없는 서랍처럼 계속 쌓이기만 한다. 3년 된 회사라면 그 서랍 안에 지금은 아무도 열어보지 않는 툴이 절반 가까이 들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새는 돈은 티가 안 난다
이 낭비가 방치되는 진짜 이유는 액수가 작아서다. 월 5만 원짜리 구독 하나가 새는 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구독이 서른 개면 매달 150만 원, 연간 1,800만 원이다. 그 중 실제로 쓰이는 게 3분의 2뿐이라면, 나머지 3분의 1인 연 600만 원은 아무 대가 없이 그냥 나가는 돈이다. 인턴 한 명을 몇 달 쓸 수 있는 금액이 순전히 아무도 확인을 안 했다는 이유만으로 EBITDA를 갉아먹고 있다. 매출을 그만큼 더 내려면 영업팀이 몇 달을 뛰어야 하는데, 이 돈은 그냥 해지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돈이다. 손익계산서 맨 아래 한 줄만 보는 경영에서는 이런 항목이 절대 눈에 띄지 않는다. 청구서를 한 줄씩 뜯어봐야 보인다.
에이전트가 상시로 감사하는 법
내가 권하는 방식은 이 확인 작업을 사람의 연례행사로 남겨두지 않는 것이다. 법인카드 결제 내역과 각 SaaS의 로그인 기록, 라이선스 좌석(Seat) 수 대비 실사용자 수를 에이전트가 매달 상시로 대조하게 한다. 지난 60일간 로그인이 없는 계정, 사용자 한 명뿐인데 팀 요금제로 결제되는 툴, 서로 기능이 겹치는 두 개의 협업 툴처럼 패턴으로 잡히는 낭비를 골라내서 목록으로 올린다. 사람은 이 목록을 보고 해지할지 유지할지만 판단하면 된다. 실사용자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물어볼 필요가 없어진다. 회사가 커지면서 신청하는 SaaS 툴이 늘어나도, 감사 담당자를 따로 뽑을 필요 없이 에이전트가 감시망을 그대로 넓혀서 돈다.
작은 누수부터 잡는 습관
굿닥을 운영하던 시절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연말 정산을 하다가 몇 년째 아무도 안 쓰는 툴에 매달 돈이 나가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발견한 적이 여러 번이다. 그때마다 느낀 건, 이런 낭비는 누가 게을러서 생기는 게 아니라 확인하는 습관 자체가 시스템에 없어서 생긴다는 것이다. 매출을 늘리는 일은 어렵고 시간이 걸리지만, 새는 구독료를 막는 일은 확인만 하면 바로 끝나는 일이다. 이렇게 확인이 쉬운 돈부터 먼저 잡는 회사가 늘어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