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문의는 왜 항상 밀리는가 — 상시 분류기가 있어야 사람은 에스컬레이션만 본다
굿닥을 운영하던 시절, 아침에 출근해서 가장 먼저 여는 화면이 고객센터 문의함이었다. 안 읽은 문의가 몇십 건씩 쌓여 있고, 그 안에는 단순한 사용법 질문도 있고 환불을 요구하는 클레임도 있고 병원 예약이 꼬여서 화가 난 사람의 글도 섞여 있었다. 상담 담당자는 그걸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읽어 내려갔다. 먼저 온 순서대로 처리하는 게 공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순서 어딘가에 정말 급한 클레임이 끼어 있으면, 그 사람은 자기보다 늦게 온 사용법 질문 뒤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문의함은 "언제 왔는지"만 알고 "얼마나 급한지"는 모른다
"선착순으로 처리하는 게 공평하다"는 말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제가 하나 있다. 모든 문의의 긴급도가 같다는 전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환불이 밀려서 카드값이 걱정된다는 문의와, 앱 사용법을 몰라서 묻는 문의는 응대 속도가 같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고객센터 문의함은 시간순으로만 정렬되어 있다. 정렬 기준이 "먼저 왔는가"뿐이라서, 담당자가 하나하나 열어서 읽어보기 전까지는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문의가 몇십 건이면 그럭저럭 버틸 만하지만, 몇백 건이 쌓이는 순간부터는 정말 급한 것이 눈에 안 띈 채로 하루를 넘기기도 한다. 담당자가 게을러서가 아니다. 순서대로 읽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형과 긴급도를 미리 정의하고 상시로 분류하게 하라
내가 권하는 방식은 문의가 올 때마다 사람이 처음부터 읽고 판단하게 두지 않고, 문의의 유형과 긴급도 후보를 미리 정의해서 에이전트가 들어오는 즉시 분류하게 만드는 것이다. 환불·결제 오류처럼 금전이 걸린 문의, 예약이나 일정이 꼬여서 당장 불편이 발생하는 문의, 단순 사용법이나 정보성 질문, 이렇게 몇 개의 축으로만 나눠도 우선순위는 대부분 갈린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반복되는 유형의 문의에는 표준 답변 초안까지 에이전트가 미리 만들어둘 수 있다. 사용법 질문의 8할은 이전에 왔던 질문과 거의 같은 문장으로 반복되기 때문에, 그 답은 매번 새로 쓸 필요가 없다. 담당자는 초안을 그대로 보내거나 한 줄 다듬어서 보내면 된다.
이건 에이전트가 고객 응대를 대신한다는 뜻이 아니다. 판단이 필요한 건, 특히 돈이 걸리거나 감정이 격한 문의는 여전히 사람이 봐야 한다. 다만 사람이 시간을 쓰는 지점이 바뀐다. 예전에는 문의함 맨 위부터 끝까지 똑같은 밀도로 읽어야 했다면, 이제는 에이전트가 걸러낸 이례 건, 즉 에스컬레이션(Escalation)된 건에만 집중하면 된다. 표준적인 문의는 자동으로 흘러가고, 판단력이 필요한 소수의 건에만 담당자의 시간이 쓰인다. 인력을 줄이자는 얘기가 아니라, 같은 담당자가 더 많은 문의량을 감당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건에는 더 깊이 들여다볼 여유가 생긴다는 얘기다.
응답 속도가 아니라 판단의 정확도가 신뢰를 만든다
고객센터를 평가하는 지표로 흔히 첫 응답 시간(First Response Time)을 본다. 물론 중요한 숫자다. 하지만 이 숫자를 줄이려고 모든 문의에 일단 빠르게 형식적인 답변부터 보내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정작 급한 문의에 대한 응답은 더 늦어질 수 있다. 속도를 올리는 방향과 정확도를 올리는 방향은 서로 다른 문제다. 분류가 먼저 되어 있어야 어느 문의에 빠른 정형 답변을 붙이고 어느 문의에 사람의 시간을 투입할지가 갈린다. 순서만 빨라지는 것과, 급한 것부터 먼저 사람이 보는 것은 결과가 완전히 다르다.
굿닥을 운영할 때는 문의 유형을 사람이 매번 눈으로 훑어 판단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정말 급한 클레임이 하루 지나서야 발견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지금이라면 그 분류와 초안 작성은 에이전트가 상시로 해두고, 나는 에스컬레이션된 몇 건만 보고 판단을 내렸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고객센터가 밀린다는 건 사람이 부족하다는 신호로만 읽히기 쉽지만, 실은 분류가 안 되어 있어서 급한 것과 안 급한 것이 같은 줄에 서 있다는 신호일 때가 더 많다. 그 줄을 다시 세우는 회사가 늘어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