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웨이가 몇 달 남았냐고 물으면 다들 얼버무린다 — 현금은 상시로 예측해야 하는 숫자다
자문을 하다 보면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런웨이(Runway)가 몇 달 남았어요?" 열에 아홉은 정확한 숫자 대신 감으로 답한다. "한 여섯 달? 일곱 달?"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스스로도 확신이 없는 표정을 짓는다. 재무제표를 못 봐서가 아니다. 통장 잔고는 매일 확인한다. 문제는 그 잔고를 가지고 계산하는 방식이 대부분 너무 단순하다는 데 있다. 잔고를 최근 몇 달 평균 지출로 나누는 식이다. 이 계산법의 함정은, 회사의 현금이 평평하게 흘러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시한다는 데 있다.
평균으로 나누면 숨는 것들
월평균 소진액으로 런웨이를 계산하면 편리하긴 하다. 숫자 두 개만 있으면 되니까. 그런데 실제 현금은 계절성과 일정에 따라 요철처럼 움직인다. 매출채권 회수가 특정 거래처의 결제 주기에 따라 40일, 60일씩 늦게 들어오는 달이 있고, 반대로 연말 정산이나 인센티브, 4대보험료처럼 특정 달에만 튀어나오는 지출이 있다. 매입채무도 마찬가지다. 평소엔 30일에 결제하다가 특정 공급처와의 계약 조건 때문에 어느 달엔 한꺼번에 두 달 치가 몰려 나가기도 한다. 급여일도 매달 같은 날이지만 그 앞뒤로 세금 신고나 4대보험 정산이 겹치면 지출이 응축된다.
이 요철을 평균으로 뭉개버리면, 실제로 현금이 가장 얇아지는 특정 주간을 놓친다. 연간으로 보면 여섯 달치 여유가 있는 회사인데, 3개월 뒤 어느 한 주에 매출채권 회수가 늦어지고 세금 납부가 겹치는 순간 잔고가 마이너스에 가까워질 수 있다. 평균은 이걸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종합건강검진에서 평균 혈압만 보고 특정 시간대에 반복되는 급격한 혈압 스파이크를 놓치는 것과 비슷하다. 위험한 순간은 늘 평균이 아니라 봉우리와 골짜기에서 벌어진다.
매일 갱신되는 예측이 있어야 한다
내가 자문하면서 권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매출채권 개별 건의 예상 회수일, 매입채무 개별 건의 지급 예정일, 급여와 4대보험과 세금 일정, 그리고 계약상 확정된 매출과 지출을 전부 캘린더에 얹어서 매일 잔고를 앞으로 밀어보는 것이다. 이걸 사람이 매주 엑셀로 손으로 하면 금방 지친다. 거래처가 수십, 수백 곳이 되는 순간 그 사람은 다른 일을 못 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안 하게 되고, 안 하니까 다시 감으로 돌아간다.
이 작업이야말로 에이전트가 맡기 좋은 일이다. 회계 시스템의 매출채권과 매입채무 원장, 급여 스케줄, 세무 일정을 매일 읽어서 앞으로 90일에서 180일치 잔고 곡선을 매일 다시 그리게 하면 된다. 사람이 이걸 매일 하지 않아도, 에이전트는 지치지 않고 매일 한다. 그리고 잔고 곡선이 특정 임계값 아래로 내려가는 시점이 보이면, 그 시점을 미리 알려주는 알람을 붙이면 된다. 이 알람은 위기가 닥친 뒤에 울리는 게 아니라, 위기가 되기 몇 주 전에 울려야 의미가 있다. 화재경보기가 불이 다 번진 뒤에 울리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유 있을 때와 위기일 때는 선택지가 다르다
여기서 진짜 중요한 건 예측의 정확도보다 알게 되는 시점이다. 잔고가 얇아지는 시점을 몇 주 전에 알면 선택지가 여러 개다. 특정 거래처와 회수 조건을 조정할 수도 있고, 매입처와 결제 일정을 재협상할 수도 있고, 지출 우선순위를 다시 짜서 급하지 않은 집행을 뒤로 미룰 수도 있고, 채용 속도를 잠시 늦출 수도 있다. 투자 유치나 대출을 검토할 시간도 있다. 이 모든 선택지는 시간이 있을 때만 존재한다.
반면 위기가 닥친 뒤에 알면 선택지는 하나로 줄어든다. 급하게 돈을 구하거나, 급하게 지출을 멈추거나. 협상 테이블에서 아쉬운 쪽은 늘 시간이 없는 쪽이다. 거래처와의 협상도, 투자자와의 협상도, 시간이 촉박하다는 게 상대에게 읽히는 순간 조건이 불리해진다. 실사에 두 달이 걸리면 이미 진 딜이라는 말이 있는데, 현금도 똑같다. 잔고가 바닥을 드러낸 뒤에 움직이면 이미 진 협상을 하는 셈이다.
매일 아침 잔고 곡선을 보는 회사
나는 굿닥을 오래 운영하면서 통장 잔고 하나 붙잡고 밤잠을 설친 시절을 겪었다. 그때 가장 아쉬웠던 건 돈이 없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얇아지는 시점을 더 일찍 알았더라면 쓸 수 있었을 선택지들을 그땐 몰랐다는 사실이었다. 지나고 나서 계산해보면 늘 몇 주 전부터 신호는 있었다. 매출채권 회수가 조금씩 늦어지고 있었고, 특정 달에 지출이 몰릴 거라는 건 계약서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신호를 매일 잔고 곡선으로 그려서 보여주는 사람이 그때 옆에 없었을 뿐이다.
지금이라면 그 일을 에이전트에게 맡길 수 있다. 회사가 매일 아침 스스로 잔고 곡선을 갱신해서 보여주고, 임계값에 닿기 전에 미리 알려주는 구조를 갖추면, 대표는 위기가 터진 뒤에 수습하는 사람이 아니라 위기가 오기 전에 손을 쓰는 사람이 된다. 런웨이가 몇 달 남았냐는 질문에 감이 아니라 숫자로 답할 수 있는 회사가 결국 협상력도, 여유도 더 오래 가져간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