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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표는 왜 창업 때 그대로인가 — 프라이싱을 상시 재설계하는 시스템

자문을 하다 보면 대표님들께 종종 여쭤보는 질문이 하나 있다. "이 가격, 언제 정하신 거예요?" 돌아오는 답이 재미있다. "음... 창업할 때요." 심지어 매출이 몇십억, 몇백억까지 커진 회사에서도 이 답이 심심찮게 나온다. 그사이 원자재값도 오르고, 인건비도 오르고, 경쟁사는 몇 번이나 가격을 바꿨는데, 정작 자기 회사의 가격표는 창업 당시에 찍은 사진처럼 멈춰 있다. 매출은 계속 성장곡선을 그리는데, 그 성장을 만든 가격은 몇 년째 낡아가고 있는 셈이다.

가격은 왜 멈춰있는가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비슷한 답이 나온다. "바꾸려면 여기저기 다 확인해야 해서요." 맞는 말이다. 가격을 하나 바꾸려면 원가 구조를 다시 뽑아야 하고, 경쟁사 가격을 다시 조사해야 하고, 기존 고객에게 미치는 영향을 가늠해야 하고, 영업팀과 고객관리팀에 공지도 해야 한다. 담당자 한 명이 이걸 다 챙기려면 하루 이틀로는 어림도 없다. 그러니 분기 계획 세울 때 "가격 재검토"라는 항목이 안건에 올라오긴 하는데, 늘 뒤로 밀린다. 지금 당장 급한 영업 목표, 채용, 신제품 출시가 우선순위를 가져가고, 가격은 "다음에 시간 날 때"로 미뤄진다. 그리고 그 "다음"은 대개 오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이유도 있다. 가격은 바꾸는 순간 눈에 보이는 리스크가 생기는 결정이다. 올리면 당장 이탈하는 고객이 나올까 봐 겁이 나고, 내리면 기존 고객이 형평성을 따질까 봐 걱정된다. 반면 가격을 그대로 두는 것에는 아무 리스크가 없어 보인다. 적어도 당장은. 그래서 담당자 입장에서는 손대서 욕먹느니 안 건드리는 쪽이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문제는 이 합리적 선택들이 쌓이면 회사 전체로 보면 매우 비합리적인 결과를 만든다는 거다. 원가는 계속 움직이는데 가격만 얼어붙어 있으면, 마진은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채로 서서히 깎여 나간다.

가격은 회사에서 제일 레버리지가 큰 변수다

그런데 정작 가격은 회사 안에서 손댈 수 있는 변수 중에 영업이익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축에 속한다. 매출을 10% 늘리려면 영업 인력을 늘리거나 광고비를 더 태우거나 신규 채널을 뚫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원가도 같이 늘어난다. 반면 가격을 몇 퍼센트만 조정해도 원가는 그대로인 채로 영업이익이 통째로 움직인다. 매출을 늘리는 일과 가격을 조정하는 일은 들어가는 노력이 완전히 다른데, 회사들은 어렵고 시간 걸리는 전자에는 매달리면서 상대적으로 손쉬운 후자는 방치한다. 순서가 거꾸로 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레버리지가 제일 큰 변수를 3년째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는 건, 매달 스스로 만든 마진을 다시 반납하고 있다는 뜻이다. 원가가 오르는 걸 그대로 두고 가격만 고정하면 마진이 줄고, 경쟁사가 가격을 낮췄는데 우리만 모르고 있으면 고객이 조용히 빠져나가고, 반대로 시장이 더 낼 용의가 있는데 우리가 먼저 올리지 않으면 그 여윳돈은 그냥 허공으로 사라진다. 가격은 한 번 정하고 서랍에 넣어두는 계약서가 아니라, 계기판처럼 계속 들여다보고 조정해야 하는 변수다.

가격을 상시 재설계하는 시스템

그래서 나는 자문을 할 때 가격 재검토를 분기 안건이 아니라 상시 프로세스로 바꾸라고 권한다.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원가 데이터, 경쟁사 가격, 고객 이탈 패턴, 견적 대비 성사율 같은 데이터를 에이전트가 상시로 수집하고 정리하게 만드는 거다. 원가가 몇 퍼센트 이상 움직이면 알림이 오고, 경쟁사가 가격표를 바꾸면 그 즉시 비교표가 갱신되고, 특정 상품군에서 견적 이탈률이 올라가기 시작하면 그 신호도 놓치지 않는다. 이걸 사람이 상시로 하려면 담당자를 한 명 붙박이로 앉혀둬야 하지만, 에이전트에게는 그저 매일 도는 정해진 업무일 뿐이다.

물론 최종 가격을 실제로 바꾸는 결정은 여전히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는 게 맞는다. 가격은 고객과의 신뢰가 걸린 문제라 대표나 담당 임원의 판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바꿔야 하는지, 얼마나 바꿔야 하는지"를 판단할 근거를 매번 새로 만드는 일과, 그 근거가 이미 준비되어 있어서 검토만 하면 되는 일은 완전히 다른 속도로 굴러간다. 전자는 미뤄지고 후자는 실행된다. 나는 이 차이가 결국 EBITDA 표에 그대로 찍힌다고 믿는다. 가격은 손대기 무서운 결정이 아니라, 매달 다시 계산해야 하는 숫자다. 이 감각을 회복하는 회사가 결국 마진을 지키는 회사가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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