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 보고서는 왜 서랍에서 죽는가 — 문서가 아니라 시스템을 남겨라
예전에 자문을 하다 보면 이런 장면을 자주 봤다. 외부 컨설팅펌이 몇 달간 인터뷰하고 데이터를 뜯어서 두꺼운 보고서를 만들어 온다. 발표 당일에는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프레임워크도 그럴듯하고 숫자도 촘촘하다. 그런데 석 달쯤 지나서 그 회사에 다시 가보면, 그 보고서는 회의실 책장이나 담당자 서랍 어딘가에 들어가 있고 아무도 열어보지 않는다. 담당 임원이 바뀌었거나, 발표 직후에는 의욕이 넘쳤지만 다음 분기 실적 압박이 들어오는 순간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거다. 나는 오랫동안 이걸 실행력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회사가 실행을 못 한다"고. 그런데 반복해서 보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실행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애초에 실행할 수 있는 형태로 전달되지 않았던 거다.
문서는 사람이 계속 읽어줘야 살아있다
보고서라는 산출물의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문서는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누군가 매주 그 문서를 다시 펴서 "우리가 이걸 하기로 했었지" 하고 되새기고, 담당자를 불러서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다음 액션을 정해야만 움직인다. 이 되새기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조직 안에 있으면 보고서는 산다. 그 사람이 다른 프로젝트로 옮겨가거나 퇴사하면, 되새겨줄 사람이 없는 보고서는 그 순간부터 죽는다. 컨설팅펌은 분석이 끝나고 발표가 끝나면 계약이 끝난다. 그 이후에 보고서를 계속 살려두는 일은 전적으로 클라이언트 조직의 몫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그 몫을 감당할 수 있는 조직이었다면 애초에 외부 컨설팅이 그렇게까지 필요하지 않았을 거다. "실행이 관건이다"라는 말이 있다. 너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실행을 계속 담당할 사람이 조직 안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전제다. 그 전제가 무너지는 순간 아무리 좋은 보고서도 서랍행이다.
산출물을 바꾸면 죽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산출물의 정의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본다. 컨설팅이 마지막에 넘겨야 하는 게 파워포인트나 워드 문서가 아니라, 그 분석이 이미 심어져서 계속 돌아가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매출 채널별 수익성이 다르니 저수익 채널의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진단을 문서로 남기면, 그 진단은 담당자가 매달 데이터를 다시 뽑아서 다시 판단해야 살아있는 지식이 된다. 반대로 그 진단 기준을 에이전트(Agent)에게 넘겨서 매일 아침 채널별 수익성을 자동으로 계산하고 기준 미달 채널을 표시해서 보고하게 만들면, 담당자가 바뀌어도 그 판단 기준은 회사 안에 그대로 남는다. 사람이 기억하고 되새겨야 하는 지식을, 알아서 반복되는 실행으로 바꿔놓는 거다. 이게 문서와 시스템의 차이다. 문서는 한 번 만들어지고 마모되지만, 시스템은 매일 실행되면서 스스로 존재를 증명한다.
서랍에 안 들어가려면 매일 말을 걸어야 한다
시스템으로 남긴다는 건 결국 그 결과물이 회사에 매일 말을 걸게 만드는 일이다. 아침에 출근하면 어제 어떤 채널이 기준을 벗어났는지, 어떤 지표가 위험 신호를 보내는지가 이미 정리되어 있는 상태. 이 상태를 만들어두면 굳이 누가 나서서 "우리 그 프로젝트 어떻게 됐지" 하고 되새길 필요가 없다. 시스템이 매일 먼저 말을 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매일의 말 걸기가 반복되면, 그 판단 기준은 어느새 조직의 습관이 된다. 처음에는 에이전트가 알려주는 걸 보고 판단하다가, 나중에는 그 기준 자체가 조직의 상식이 되는 식이다. 좋은 컨설팅의 최종 목표가 사실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외부인이 조직에 새로운 판단 기준을 심어주고, 그 기준이 사람의 의지와 무관하게 계속 작동하다가, 마침내 조직 스스로의 감각이 되는 것. 문서는 이 여정의 중간 산출물일 뿐이지 최종 산출물이 될 수 없다.
보고서를 쓰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분석은 여전히 필요하고, 그 분석을 정리한 문서도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그 문서가 조직에 심어지고 끝나는 게 아니라, 문서에 담긴 판단이 매일 돌아가는 무언가로 옮겨 타야 한다는 거다. 나는 컨설팅의 다음 세대가 여기서 갈릴 거라 믿는다. 잘 쓰인 문서를 넘기는 펌과, 계속 돌아가는 시스템을 심어놓고 떠나는 펌. 후자로 넘어가는 컨설팅이 늘어나길 바래본다.